치매
과거를 잊어버린다는 것
아쉬울 것도 같지만
우리 인생은 애초에 덤이었으니
과거를 잊어버린다 해도 별로 밑질 것은 없다
아름다운 추억이 우리를 즐겁게도 하지만
또 아픈 기억들이 얼마나 괴롭게 하는가?
밝은 내일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인가?
그러나 죽음이 임박해 오는 사람에겐
내일이 얼마나 괴로운 고문이겠는가?
그런데 치매는
모든 기억과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므로
불행이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겠다
기억력이 좋다고 뽐내는 사람들아
20년 전 오늘, 바로 이날의 점심을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얼 먹었는지 기억하는가?
그런 것 잊었다고 해서
불완전한 인생이 아니듯이
과거의 기억들 다 잊었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어쩌면 과거를 지워버린 이들은
매일매일 맑은 백지 위에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삶을 만들지도 모른다
/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