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음표들이
햇살을 물어 나른다
푸른 숲 산과 들에
메아리치던 노래
불다 간 바람이듯이
귓가에 머무는데
수의(壽衣)를 갈아입고
잠자리에 드는 밤
아름다운 이 세상
하직할 듯했건만
날 새면 들리는 새 소리
또 하루가 밝아온다 /김정희
꽃샘추위가 엄동보다 매울 때도 있다. 꽃봉오리를 흔드는 게 오죽 심술스러웠으면 꽃샘 같은 예쁜 말을 붙였을까만. 사실 겨울이 갔다는 방심(放心)을 치고 들어오니 꽃샘이 더 추운 것은 당연하다. 마음을 풀어놓는 여유도 필요하지만 그게 곧 찔리기 쉬운 틈이기도 하니 말이다.
경칩 앞두고 '초록빛 음표들이' 높아진다. '햇살을 물어 나르'며 뿌리는 봄빛들이 밝다. 그런데 그 소리 앞에서도 '수의(壽衣)를 갈아입고/잠자리에 드는 밤'이 있다. 이런 준비도 있나 싶어 망연해지며 봄이 봄 같지 않을 이들을 생각한다. 진달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새소리를 내일 또 들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날 새면 들리는 새 소리'에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모두 하루하루를 수의 입혀 보내는 셈이지만, 늘 다시 맞기에 잊고 살 뿐이다. 오늘치 '초록빛 음표들' 배달에 초록! 답해본다.//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