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총명이
어둠을 허물고 있네.
그윽이 사르는
첫새벽을 발원(發願)하여
맺힌 꿈
속속들이 풀고
한마당
차는 것이여.
산허리를 간질이며
흰 여울을 일으키며
소리죽여 흐르는
저 보석들의 강(江)
그 겨울
허망한 자리
봄이
쌓이고 있네. /김남환
입춘 지나 내리는 비는 봄비라 부르고 싶다. 겨우내 춥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의 추위가 꽤나 매웠던 탓에 더하지 싶다. 겨울 한파에 짓눌렸던 자리마다 짚어주는 비의 손길이 갈수록 촉촉해 반갑다. 어느새 때가 되어 '하늘의 총명이' 깊이 잠긴 겨울 '어둠을 헐고' 있는가. 비는 깊은 산골짝 얼음 궁전에도 스며들어 '속속들이 풀'고 후미진 곳의 '맺힌' 것까지 다 풀어내어 푸른 생명 지필 마련을 하리라.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산허리를 간질이'는 비의 숨결이며 '흰 여울을 일으키'는 비의 손가락이 잡히는 것 같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심술을 떨더라도 봄비는 생명을 깨울 '보석들의 강'을 쉼 없이 빚어 보내리라. 그렇게 속속들이 풀린 산하에 봄빛이 그득히 찰 날도 멀지 않다고 속살거리는 비에 귀를 길게 맡긴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듯 봄이 쌓이는 날이라 불러본다. //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