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내려놓을 한 치 땅도 없는 경계를 무너뜨린 길바닥 더듬는다 눅눅히 찢어진 지폐 주머니에 잠잠하다 수없이 잘린 발목 다독이며 돌아와 그 길 혹 물으면 막무가내 팔 내둘러 갈 길이 다른 사람들만 북적이는 정류장 조바심치는 먼 길 눙치며 내리는 눈 끊겨버린 전화에 안부 더욱 궁금한 끝끝내 닿을 수 없는 천길만길 그 고요 /이숙경
오지의 눈은 깊이 내린다. 더 희고 적막하게 쌓이고 쌓인다. 일상이 비루해질 때 떠올리는 오지는 그래서 더 순결한 눈의 거처로 그리워진다. '경계를 무너뜨린' 신천지의 매혹으로 사위는 눈이 시리다. 그런 겨울 동해로 뛰어내리는 소낙눈 앞에 선 적이 있다. 산중으로 들어갈수록 눈은 고독으로 푸르고 깊었다. 길을 지우고 집을 가두며 '끝끝내 닿을 수 없는 천길만길 그 고요'의 나라들. 그런데 굶주린 짐승들이 뒤란을 어슬렁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설국의 낭만이 아니고 만다. 그렇게 처마까지 쌓인 눈집에서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동면해보자던 약속이 새삼스럽다. 한때의 취기 어린 말들은 눈석임물로 또 흘러가리라. 쌓아둔 책이나 눈 치우듯 치워가는 겨울 도심의 오지도 괜찮다면서….//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