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모서리 앉지 마라
말씀하신 아버지가
명퇴 후 습관처럼
모서리에 앉아계신다
가운데 앉으세요
해도 고개만 저으신다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가장(家長) 자리에서
가장자리된 아픈 이름
한사코 가운데자리 앉혔다
눈시울이 뜨겁다
/이태정
자리로 사람값 매기는 게 세상의 인심이다. 무슨 행사마다 의전에 예민한 것도 자리가 곧 위상인 때문이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등 위치에 따라 그 표상이며 속내도 사뭇 복잡하다. '측근'이라는 오랫동안 득세해온 자리도 '최측근'에서 다시 '친(親)'이니 '진(眞)'으로 회자되며 자릿값을 깨우쳐준다. 그런 당락이야 먼 데 일로 넘긴다지만, 아버지의 '명퇴'는 주변에 그늘을 드리울 우리 집안의 일이다.
'가장(家長) 자리에서 가장자리된 아픈 이름'들. 그렇듯 퇴직은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는 일이다. '명퇴'라지만 물러앉음 자체가 명예롭지 못한 이후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자리가 있으면 올라가는 자리도 있을진대, 연말 탓인지 퇴직의 그림자들이 더 길게 쓸쓸하다. 그래도 '가운데자리 앉'히고 싶은 이 땅 아버지들의 오랜 수고 덕에 또다시 꽃피는 봄은 올 것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