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성품이 각지고 앙칼졌다. 불의를 참지 못했다. 광해의 폐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1621년 월사 이정귀(李廷龜·1564~1635)가 마침 자리가 빈 태학사(太學士) 자리에 유몽인을 추천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유몽인이 즉각 월사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해 기근이 들었을 때 아이들이 떡을 두고 다투길래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미끈거립디다. 몽인은 강호에 살면서 한가하여 아무 일이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을 읽고, 올해는 두보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노년의 벗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과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일 같은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去歲年饑, 羣兒爭餠, 而歸察之, 鼻液糊矣. 夢寅處江湖, 閑無事.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此眞臨年者伴也, 以此餞餘生足矣. 如與群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
얼마 후 그는 아예 금강산으로 들어가 버려 자신의 말이 그저 해본 소리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지은 시에 '늙은 과부의 탄식(孀婦歎)'이란 시가 있다. "일흔 살 늙은 과부, 홀로 살며 빈방 지켜. 여사(女史)의 시 익히 읽고, 임사(妊姒) 훈계 잘 안다네. 이웃이 개가 권하며, 신랑 얼굴 잘났다고. 흰머리로 단장하면, 연지분에 부끄럽지(七十老孀婦, 單居守空壺. 慣讀女史詩, 頗知妊姒訓. 傍人勸之嫁, 善男顔如槿.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시 속의 임사는 문왕과 무왕의 어머니이니 덕 높은 부인의 의미다. 다 늙어 개가해 팔자 고쳐보겠다고 연지분을 바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면 그 꼴이 부끄럽지 않겠느냔 얘기다.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글항아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참된 뜻이 배반당하고, 이상주의가 이용당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제의 충성이 오늘의 모반이 되고 만다."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해괴한 일이 많아진다. 흰머리에 연지분을 바르며 출사표를 던지지만 그가 노리는 것이 고작 코 묻은 떡에 지나지 않으니 딱하고 민망하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