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직필 (中鋒直筆)
처음 붓을 잡을 때부터 중봉직필(中鋒直筆)이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중봉은 붓끝 뾰족한 부분이 어느 방향이든 모든 획의 정중앙을 지나야 한다는 뜻이다. 직필은 붓대가 지면과 직각을 이뤄야 한다는 말이다. 손목이나 손가락으로 재주를 부릴 수 없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필관을 야물게 잡아야 중봉직필이 된다. 반대로 측필편봉(側筆偏鋒)은 붓을 좌우로 흔들어 붓끝을 필획의 측면으로 쓸며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눈을 놀라게 하는 획이 나오겠지만 정공법은 아니다.
상유현(尙有鉉·1844~1923)의 '추사방현기(秋史訪見記)'에 중국 사람 탕상헌(湯爽軒)이 추사의 글씨를 평한 대목이 있다. 중국 사람이 추사의 글씨를 값을 안 따지고 다투어 사가는데, 예서만 찾지 행서나 초서는 편획(偏劃)이 있어 높이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서는 고기(古氣)가 넘치고 법식에 맞아 참으로 동방의 대가가 되나, 행초의 획은 편획이 많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썼다.
진계유(陳繼儒)의 '진주선(眞珠船)' 중 다음 짧은 글이 인상적이다.
"강남의 서현(徐鉉)은 소전(小篆)체의 글씨를 잘 썼다. 햇빛에 비춰 살펴보면 글자마다 한 줄기 진한 먹이 모든 획의 정중앙을 지나고 있었다. 굽거나 꺾이는 획에서도 한편으로 쏠리는 일이 없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전서체를 쓰면서도 중봉직필(中鋒直筆)을 잃지 않았더라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지도자가 조직을 이끄는 법도를 말한 글로 읽었다. 리더는 중봉직필이라야지 측필편봉은 안 된다. 멋있어 보이려고 손목을 써서 붓대를 누이거나 측필을 쓰면 잠깐은 통해도 오래 못 간다. 답답해도 듬직한 정공법이 맞다. 그러지 않으면 권모술수와 부화뇌동만 는다.
한번은 인사동을 지나다가 서예전을 하길래 들렀다. 전서 병풍의 필획이 아무래도 어색해 가까이 가서 보니 다른 사람이 쓴 글씨 위에 종이를 대고 볼펜으로 획을 그린 후 그 위에 덧칠해 쓴 글씨였다. 철필로 획의 중심을 잡긴 했는데 접골이 되지 않아 근골이 제멋대로 따로 노는 격이라고나 할까? 민망하고 딱해서 혼자 한참을 웃었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