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호피(羊質虎皮)
한여유(韓汝愈·1642~1709)는 '양절반씨자치통감총론(陽節潘氏資治通鑑總論)'에서 이렇게 썼다. "겉은 은인데 속은 쇠이거나(外銀裏鐵), 바탕은 양인데 껍데기만 범인 자(羊質虎皮)들은 평소에도 착하지 않아 못 하는 짓이 없고 제멋대로 굴며 사치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다. 이를 두고 소인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지위를 맡기면 충신과 어진 이를 배척하여 몰아내고 백성을 벗겨서 제 이익만을 취한다. 아래에서 사람이 원망하고 위에서 하늘이 노해 해침이 동시에 이르고 세상은 탁해져 어지럽게 된다(若夫外銀裏鐵, 羊質虎皮, 閒居不善, 無所不至. 放僻奢侈, 無所忌憚, 是所謂小人也. 如是者當路, 則斥逐忠賢, 剝民興利. 人怨於下, 天怒於上, 菑害竝至, 海內濁亂)."
김조순(金祖淳·1765~1832)이 자기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애초에 의리(義利)의 공교로움을 따져 살피지 않고 그저 듣기 좋은 소리와 웃는 모습으로 공손하고 삼가며 바르고 중도에 맞는 듯한 태도를 짓는 자는 또한 양질호피의 부류일 뿐"이라며 "큰 바탕이 서지 않았는데 스스로 세속과 다르다고 여기는 자는 망령된 사람"이라고 적었다.
위 두 글에 나오는 양질호피란 말은 한나라 때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중 '오자(吾子)'에 처음 보인다. 그 말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여기 제 입으로 성이 공(孔)씨이고 자는 중니(仲尼)라는 사람이 있다 칩시다. 그 문에 들어가고 그 집 마루에 올라 그 책상에 앉아 그의 옷을 입는다면 중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겉만 그렇지 바탕(質)은 아니다." "바탕이란 게 뭔데요?" "양의 바탕에 범의 껍질을 쓰니 풀을 보면 기뻐하고 승냥이를 보면 벌벌 떤다. 제가 범의 껍질을 뒤집어쓴 것을 잊은 게지."
중니를 자로 쓰고 성이 공씨라 해서 다 공자가 아니다. 보통 때는 겉만 보고 대단하게 여겼다. 막상 하는 짓을 보니 고작 승냥이 앞에서 두려워 납작 엎드리고 풀만 보면 침을 흘리며 달려가더란 얘기다. 그 모습을 보고도 여전히 벌벌 떨며 그 앞에서 꼼짝 못 하는 여우 토끼도 딱하기는 한가지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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