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화가 심주(沈澍)의그림 화제(畵題)에서 홍소록장(紅消綠長)이란 네 글자를 보았다. 붉은 꽃이 스러지자 초록이 짙어져 온다는 것이다. "꽃 지자 새잎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로 시작되는 옛 노래가 생각난다. 꽃 시절이 가면 초록의 계절이 돌아온다. 여린 새잎은 어느새 낙엽으로 져서 뿌리로 돌아간다.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 속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런가?
일본의 요괴화 그림 앞에는 양장음소(陽長陰消)란 네 글자가 적혀 있다. 양의 기운이 강해지면 음(陰)의 어두운 기운은 제풀에 소멸한다는 말이다. 음양이 조화를 잃으면 이매망량(魑魅魍魎)의 '귓것'들이 판을 친다. 음의 기운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아도 양의 건강한 기운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 일껏 요괴를 잔뜩 그려놓고 무슨 마음으로 이런 글귀를 써놓았을까? 우리 주변에 요괴는 얼마든지 있다. 내 영혼이 건강하고 이 사회가 건강하면 이런 것들은 결코 준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잠시 빈틈을 보이면 이것들이 날뛴다. 그러니 요괴를 두려워 말고 내 정신의 기운이 시드는 것을 경계하라. 이런 뜻이었지 싶다.
괜찮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었더니 눈길 주는 곳마다 귓것들이 날뛰고 있는 줄 몰랐다. 이만하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턱도 없다. 이익이 된다면 불법이 대수며 속임수 거짓말이 문제겠는가? 나쁜 줄 알고 안 되는 줄 알지만 한다. 나뿐 아니라 다 그렇다는 것처럼 마음 놓이는 면죄부가 없다. 잘못은 되풀이되는 동안 타성으로 자리 잡는다. 나쁜 짓 하다 걸리면 반성하지 않고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혼자의 떳떳한 기운이 세상의 사악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것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귓것은 눈 하나에 뿔 달린 괴물이 아니다. 너무 멀쩡해서 분간이 안 된다. 어찌해야 양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음의 기운이 제풀에 스러지게 하나? 꽃 지면 새잎 돋는 물리의 순환이 피가 돌듯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