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 초의(草衣)는 다산이 특별히 아꼈던 제자다. 다산은 처음에 그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가 성에 차지 않았던 듯 수십 항목으로 적어준 증언에서 진취적인 학습 자세를 반복하여 강조했다.
이들 증언은 다산의 문집에는 모두 빠졌고 신헌(申櫶·1810~1884)이 초의에게 들렀다가 다산이 그에게 써준 증언(贈言)을 보고 베껴 둔 '금당기주(琴堂記珠)'란 기록 속에 남아 전한다. 다음은 그중 학문의 바탕을 갖추기 위해 지녀야 할 덕목을 말한 한 대목이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혜(慧)와 근(勤)과 적(寂) 세 가지를 갖추어야만 성취함이 있다. 지혜롭지 않으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가 없다. 고요하지 않으면 오로지 정밀하게 하지 못한다. 이 세 가지가 학문을 하는 요체다.(學者必具慧勤寂三者, 乃有成就. 不慧則無以鑽堅; 不勤則無以積力; 不寂則無以顓精. 此三者, 爲學之要也.)"
위학삼요(爲學三要), 즉 학문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덕목으로 혜(慧)·근(勤)·적(寂)을 꼽았다. 굳이 불가의 표현을 쓴 것은 초의의 신분이 승려임을 배려해서다.
첫 번째 덕목은 지혜다. 지혜로 찬견(鑽堅), 즉 나를 가로막는 굳센 장벽을 뚫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근면이다. 밥 먹고 숨 쉬듯 기복 없는 노력이 보태져야 적력(積力), 곧 힘이 비축된다.
세 번째로 꼽은 것은 뜻밖에 적(寂)이다. 공부에는 고요와 침묵으로 함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정(顓精), 즉 정수(精粹)와 정화(精華)를 내 안에 깃들이려면 외부의 번화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적묵(寂默)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지혜로 속도를 내고 근면으로 기초 체력을 다져도 침묵 속에 방향을 가다듬지 않으면 노력이 헛되고 슬기가 보람 없다. 방향을 잃은 지혜, 목표를 놓친 노력은 뼈에 새겨지지 않고 오히려 독(毒)이 된다.
제 재주를 못 이겨 발등을 찍고 제 노력만 믿고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을 심는다. 적(寂)을 가늠자 삼아 자칫 무너지기 쉬운 균형을 끊임없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일깨워 준 것이 절실하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