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聊)는 부사로 쓸 때는 '애오라지'로 새기고, 보통은 힘입다,즐긴다는 의미로 쓴다. 무료(無聊)하다는 말은 즐길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옛글에서는 흔히 무료불평(無聊不平)이라고 썼다. 회재불우(懷才不遇)! 재주를 품고도 세상과 만나지 못했다. 꿈이 있고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이때 생기는 마음이 무료불평이다. 마음에 맞는 일이 없어 무료하고, 그 끝에 남는 것이 불평이다. 불평은 마음이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아 울근불근하는 상태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우성전(禹性傳)에게 쓴 짧은 편지에서 "그의 글은 앞서 보았는데, 그 말에 무료불평의 뜻이 조금도 없어 깊이 경복할 만합니다"라고 했다. 충분히 무료불평을 품을 만한 상황임에도 그가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내용이다. 사람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으면 무료불평에 빠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료불평을 꾹 눌러 이것을 창조적 에너지로 쏟아 부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한유(韓愈)는 '고한상인을 전송하는 글(送高閑上人序)' 에서 "장욱(張旭)은 초서를 잘 써 다른 기예는 익히지 않았다. 기쁨과 노여움, 곤궁함과 즐거움, 원한이나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거나, 술에 취해 무료불평이 마음에 격동됨이 있으면 반드시 초서에다가 이를 폈다"고 썼다. 그의 초서가 위대한 것은 손재주로 쓴 글씨가 아니라 그 안에 무료불평의 기운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정귀(李廷龜)도 권벽(權擘)의 시집에 쓴 서문에서 "희로애락과 무료불평을 반드시 시에다 펼쳐서 밖으로 영욕(榮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에 대한 몰입과 맞바꾸지 않았다"고 썼다. 이럴 때 무료불평은 건강한 창작 활동의 원천이 된다.
젊음은 본능적으로 무료불평의 상태다.무언가 하고 싶은데 세상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할 수 있는데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몰라서 무료불평에 빠지기도 한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구성원의 무료불평을 어떻게 창조적 에너지의 동력으로 삼도록 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무료불평을 술 먹고 부리는 행패로 풀게 하면 안 된다. 자신에게 나는 분(忿)을 남에게 퍼부으면 못쓴다. 시스템의 마련만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의지가 중요하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