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식 선생이 구해 복사해준 『아고수집(雅古搜輯)은 추사와 다산 등의 친필 필첩과 화론(畵論)을 옮겨 적은 소책자다.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인장이 찍혀있다. 읽다가 다음 글에서 눈길이 멎었다.
“빈천이 부귀만 못하다는 것은 속된 말이다. 부귀 보다 빈천이 낫다는 것은 교만한 말이다. 가난하고 천하면 입고 먹는 마련에 분주하고, 아내와 자식이 번갈아 원망한다. 어버이를 봉양하지도 못하고, 자식을 가르칠 수도 없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다만 전원이 그나마 넉넉하고, 언덕과 골짜기가 기뻐할만 하다. 물에서는 고기와 새우를 벗 삼고, 산에서는 고라니와 사슴을 동무 삼는다. 구름을 밭 갈며 달을 노래하고, 눈을 낚시질하며 꽃을 읊조린다. 뜻 맞는 벗과 짝지어 어울리고, 소 먹이는 아이는 장난치며 무릎 사이로 붙는다. 어떤 때는 한칸 방에 오도카니 앉아 고요함을 익히며 아무 일도 작위하지 않는다. 혹은 수레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여러 날 머물며 돌아옴을 잊는다. 즐겁기가 진짜 신선만 못지 않아도, 어찌 늘상 족하겠는가? 초저녁에 잠들어 대낮에야 일어난다. 뜨락은 고요하고 창문은 환하다. 그림과 책을 펼쳐놓고 거문고와 술잔으로 날마다 즐긴다. 흥이 일면 작은 배를 띄워 읊조리며 강과 산의 사이에서 옛일을 돌아본다. 좋은 차와 막걸리는 근심을 녹여주기에 충분하고, 미나리와 게는 입맛을 돋우기에 알맞다. 이야말로 세간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貧賤不如富貴, 俗語也. 富貴不如貧賤, 驕語也. 貧賤則奔走衣食, 妻孥交謗. 親不及養, 子不能敎, 何樂之有. 唯 是田園粗足, 丘壑可怡, 水侶魚蝦, 山友麋鹿. 耕雲誦月, 釣雪吟花. 同調之友, 兩兩相命, 食牛之兒, 戱着膝間. 或兀坐一室, 習靜無營, 或命駕杖藜, 留連 忘返. 爲樂不減眞仙, 何尋常足云. 三商而眠, 高舂而起, 靜院明窓, 羅列圖史, 琴樽以日娛. 有興則汎小舟, 吟嘯覽古於江山之間. 渚茶野釀, 足以消憂, 蓴 菜稻蟹, 足以適口. 是爲世間至樂.)
지은이는 분명치 않다. 이 글을 베껴 쓴 추사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부귀를 가벼이 보는 것은 몰라도 빈천을 자랑함은 건방진 말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와닿는다. 중간에 ‘습정무영(習靜無營)’, 즉 고요함을 익혀 작위하지 않는다는 표현에 밑줄을 그었다. 이 바쁜 세상에 무슨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잠꼬대 같은 소리냐는 빈정거림이 들릴 법하다. 그때도 이런 생활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귀가 무작정 자랑이 아니듯, 빈천도 부끄럽기만 할 일은 아니다. 부귀에 취하고, 빈천에 짓눌려 황폐해진 삶은 보기에 민망하다. 부족해도 부자로 사는 방법이 있다. 세간의 지극한 즐거움[世間至樂]은 마음으로 누리는 것이지 재물로는 안 된다. 작위함을 버려야 내면에 고요가 깃든다. 어디서 세간의 지락을 누려 볼까?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자꾸 마음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