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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물무성(潤物無聲)

며칠 봄비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두보의 '봄 밤의 기쁜 비(春夜喜雨)'를 읽는다. "좋은 비 시절 알아, 봄을 맞아 내리누나. 바람 따라 밤에 들어, 소리 없이 적시네. 들길 구름 어둡고, 강 배 불빛 홀로 밝다. 새벽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이 가득.(好雨知時節,當春乃發生. 随風潜入夜,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江船火獨明. 曉看紅濕處,花重錦官城.)"

 

봄비가 시절을 제 먼저 알아 때맞춰 내린다.  바람을 따라 살금살금 밤중에 스며들어 대지 위의 잠든 사물을 적신다(潤物). 하도 가늘어 소리조차 없다(無聲). 세상길은 구름에 가려 캄캄한데, 강물 위 한 척 배에 등불이 외롭다. 모두 잠들어 혼자 깨어있다.

 

시인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세상을 적시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었다. 들창을 열고 캄캄한 천지에 가물대는 불빛 하나를 보았다. 시인의 눈빛이 고깃배의 불빛과 만나 깊은 어둠 속을 응시한다. 어둠의 권세는 여전히 강고해서 밝은 날이 과연 오려나 싶다. 깜빡 잠이 들었던 걸까? 창밖이 환하길래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에나! 산이고 강가고 할 것 없이 천지에 촉촉이 젖은 붉은 빛뿐이다. 밤 사이에 그 비를 맞고 금관성 일대의 꽃이란 꽃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던 것이다. 기적이 따로 없다. 간밤 강 위에서 가물대던 등불 하나. 그를 안쓰러이 바라보던 나. 봄비는 잠든 사물을 깨우고, 뒤척이던 꽃들을 깨웠다.

 

정몽주(鄭夢周)는 '춘흥(春興)'이란 시에서 두보의 시상을 이렇게 잇는다. "가는 봄비 방울조차 못 짓더니만, 밤중에 가느다란 소리를 낸다. 눈 녹아 남쪽 시내 물이 불어서, 풀싹들 많이도 돋아났겠네.(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雪盡南溪漲, 草芽多小生.)" 속옷 젖는 줄도 모르게 사분사분 봄비가 내렸다. 밤중에 빈방에 누웠는데 무슨 소리가 조곤조곤 들린다. 뭐라는 겐가? 그것은 언 땅이 풀리는 소리. 눈 녹은 시내에 처음으로 물 흐르는 소리. 새싹들이 땅을 밀고 올라오는 소리. 기지개를 펴고 그만 나와라. 잔뜩 움츠렸던 팔과 발을 쭉쭉 뻗어보자. 봄이 왔다. 깨어나라. 봄이 왔다. 피어나라.

 

그간 우리는 너무 소음에 시달렸다. 추위와 어둠에 주눅 들어 지냈다. 소리 없이 적시는 봄비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 어둠이 떠난 자리,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듯 터져 나오는 봄꽃의 함성, 새싹들의 기운찬 합창을 들려다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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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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