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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판서(雜菜判書)

광해군이 외교 수완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치(內治)는 어지러웠다. 폐모살제(廢母殺弟)는 백성도 죽음을 면치 못할 반인륜적 행위였다. 권력에 눈먼 측근들이 곁에서 이를 부추겼다.

 

이충(李冲)은  겨울철이면 집안에 온실을 지어  채소를 심었다.  맛난 반찬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임금께 올렸다. 이 일로 총애를 입어 호조판서에 올랐다.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잡채판서 납신다'며 침을 뱉었다. 한효순(韓孝純)은 산삼을 구해 바쳐 재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산삼각로(山蔘閣老)'라고 불렀다. 각로(閣老)는 정승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이가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산삼각로 앞다퉈 사모하고, 잡채판서 권세는 당할 수가 없다네. (山蔘閣老人爭慕, 雜菜判書勢莫當)" "국조전모(國朝典謨)"에 나온다.

 

이이첨(李爾瞻)은 왕의 총애를 믿고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반대파는 무옥(誣獄)으로 얽어서라도 반드시 해코지했다. 시관(試官)을 제 무리로 채워, 미리 표시를 해둔 답안지만 골라서 뽑았다. 이이첨의 둘째아들 이대엽(李大燁)은 대필 답안지로 잇달아 장원에 뽑혔다. 그는 '정(政)'자와 '공(攻)'자를 분간 못할 만큼 무식한 자였다.

 

왕비 유씨의 오라비 유희분(柳希奮)은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했다. 시관의 부채에 '오류(五柳)'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포의(布衣) 임숙영(任叔英)이 전시(殿試)의 대책(對策)에서 권신의 전횡과 외척의 발호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광해군이 성을 내며 삭과(削科)를 명했다. 시인 권필(權韠)이 격분해서 시를 지었다. "대궐 버들 푸르고 꾀꼬리는 어지러이 나는데,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하례하나, 뉘 시켜 포의 입에서 바른말 하게 했나.(宮柳靑靑鶯亂飛, 滿城官盖媚春暉.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궁류(宮柳)는 외척 유씨를, 꾀꼬리는 난무하는 황금, 즉 뇌물을 뜻한다. 권필은 임금 앞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귀양가다가 장독(杖毒)이 솟구쳐 동대문 밖에서 급사했다. 훗날 인조반정의 한 빌미가 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하고  임금을 받든다는 명분을 앞세워  못하는 짓이 없었다. 잡채판서, 산삼각로란 더러운 이름을 일신의 부귀와 맞바꿨다. 지금에 간신(奸臣)의 오명만 남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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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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