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
오래된 LP판 위로 햇살이 앉아있다
쉰 소리로 돌아가는 그대 낡은 봄빛
갈라진
발뒤꿈치 사이
꽃물 드는 저물녘
가등 켜진 골목길 한 짐 시름 부려놓고
바람 풍금 마디마다 풀어 가는 봄날이여
촘촘히
파고든 허물
마냥 투명하다 /김용주
'빗살무늬'는 참빗의 고운 결을 담고 있다. 섬세한 올을 지닌 명주바람의 문양을 담은 것도 같다. 그보다 많이 겹치는 전통 토기 덕에 빗살무늬 기억은 각별하다. 그런데 '오래된 LP판 위'에 앉아 있는 햇살과 그 안팎을 '쉰 소리로 돌아가는 그대 낡은 봄빛'이 얹힌다면 그 빗살무늬야말로 애틋하기 짝이 없겠다. 그것도 '갈라진 / 발뒤꿈치 사이 / 꽃물 드는 저물녘'이니! 사라져가는 것들을 따라가는 눈빛 그늘이 길게 잡힌다.
'바람 풍금'도 마디마디 봄날을 풀어가고 '가등 켜진 골목길'에는 한 짐씩 부려놓은 시름 그늘이 짙어진다. '갈라진' 잔금들이 모여 있는 '발뒤꿈치 사이'로 엮는 늙어감의 그 쓸쓸한 무늬들. 그 곁에서 '낡은 봄빛' 결을 파고드는 빗살의 여운이 나직이 회오리친다. 그러는 동안 봄 한철을 한껏 피운 꽃들도 빗금을 그으며 속절없이 떠나고 있다.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