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사발

시 두레 2015. 4. 19.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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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사발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가랑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누가 거기 두고 갔는지

                이 빠진 사발은

                똑, 똑, 똑, 지붕의 빗방울을 받아

                흙먼지 가득한 입을 열었다

                그릇의 중심에서

                출렁이며 혀가 돋아나

                잃었던 소리를 되살려 놓는 것

                둥글게 둥글게 물의 파장이

                연이어 물레를 돌리자

                금 간 연꽃도

                그릇을 다시 향기로 채웠다

                사람을 보내놓고 허기졌던 빈집은

                삭은 입술을 사발에 대고

                모처럼 배를 채웠다 /길상호

 

   조용조용하게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사람이 떠난 빈집 마당 한구석에는 사기로 만든 그릇이 하나 놓여 있다. 사발은 위가 넓고 아래는 좁으며 굽이 있고 줄금이 나 있다. 그 그릇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빗방울이 똑, 똑, 똑, 떨어지자 사발이 둥근 입을 벌려 그것을 받는다. 빗방울을 받아 다시 소리가 생겨나고 점차 물결이 생겨나고 연꽃 봉오리가 벙글어 향기가 돈다. 심지어 빈집이 그 사발에 입을 대고 괸 봄비를 마셔 곯은 배를 채운다.

   빗방울로 인해서 이 폐옥(廢屋)의 사물들은 깨어나고 그 혈색에 한결 생기가 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말라 있던 빈집이 사발의 빗물을 스스로 들이켠다는 상상력은 얼마나 역동적인가. 시인 엘리엇(T S Eliot)이 쓴 시의 구절처럼 봄비는 생명이 잠들어 있는, 메마른 뿌리를 흔들어 깨운다. //문태준 시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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