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尹拯·1629~1714)이 게으른 선비에게 준 시에 이런 것이 있다."열심히 공부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법, 남산의 안개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네. 그대 집엔 천 권의 서적이 있건만, 어이해 상머리서 바둑이나 두는 겐가(多少工夫靜裏宜, 南山霧豹可能知. 君家自有書千卷, 何用床頭一局?)." 공부는 외면한 채 바둑 같은 잡기로 세월을 낭비함을 나무란 내용이다.
시 속에 남산무표(南山霧豹), 즉 남산 안개 속에 숨어 있는 표범 이야기는 한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나온다. 도답자(陶答子)란 사람이 있었다. 3년간 질그릇을 구워 팔았다. 명예는 없이 재산만 세 배나 불었다. 그의 아내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남편에게 여러 차례 그러지 말라고 간했다. 도답자는 들은 체도 않고 부의 축적에만 몰두했다. 5년이 지나 그가 엄청나게 치부해서 백대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 집안사람들이 소를 잡고 그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도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서 울었다. 시어머니는 이 기쁜 날 재수 없이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玄豹)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녀를 내쫓았다. 1년이 못 되어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짙고 기름진 무늬로 문득 변한다. 그 변화가 참으로 눈부시다. "주역"에도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이다. 부스스 얼룩덜룩하던 털이 내면이 충실해지면서 어느 순간 빛나는 무늬로 바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공부를 내팽개친 채 여기저기 기웃대면, 문채는 갖추어지지 않고 그저 지저분한 개털만 남는다. 잠깐의 포만감과 빛나는 문채를 맞바꾼다면 민망하지 않겠는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