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여러 폭의 자화상을 직접 그렸다. 그 가운데 걸작으로 꼽는 것이 70세 때인 1782년에 직접 그린 것이다. 그런데 그 차림이 묘하다. 머리에는 관리가 쓰는 관모를 썼고, 몸에는 관복이 아닌 야인의 도포 차림이다. 초상화 상단에는 직접 짓고 쓴 찬(讚)이 적혀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눈썹 수염 하얗구나. 오사모(烏紗帽)를 쓰고서 야복(野服)을 걸쳤다네. 산림(山林)에 마음 두고, 조정에 이름 둠을 이를 보고 알 수 있지. 가슴속엔 기이한 책 간직해두고, 붓으로는 오악을 뒤흔드누나. 남들이야 어이 알리, 나 혼자서 즐길 뿐. 옹의 나이 칠십이요, 옹의 호는 노죽(露竹)이다. 그 초상은 직접 그리고, 찬도 직접 지었다네."
말 그대로 자화자찬(自畵自讚)에 해당한다. 찬은 그 대상을 기려 칭송한 글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내용이 없고 칭찬의 뜻만 있다. 자기가 자기 얼굴을 그려놓고 제 입으로 또 칭송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자부의 핵심을 관모를 쓰고 야복을 걸친 모습에 두었다. 그는 66세 나던 1778년에 문신 정시(廷試)에서 장원으로 뽑혀 종2품 가의대부에 올랐고, 1781년에 호조참판이 되었다.
머리에 쓴 관모는 현재 자신이 벼슬길에 몸담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최소한의 징표다. 하지만 관복 대신 야복을 입힘으로써 정신의 추구만은 산림에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내 비록 관부에 적(籍)을 걸어두고 있지만, 언제나 산림 선비의 청정한 정신으로 산다. 이것이 강세황이 이 자화상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지점이다. 이는 71세 때 화가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의 공식적인 초상화가 관복과 관모를 입은 모습을 한 것과 견줘봐도 분명하다.
얼마 전 취임 3주년을 맞은 대통령이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세운 업적을 너무 자랑하지 말라"고 했대서 화제였다. 맥락이 있어 나온 언급이겠지만 구제역이다 뭐다 해서 나라가 온통 뒤숭숭한 판에 나온 이 말의 방점이 '너무 자랑 말자'의 겸손에 있는지, '우리가 세운 업적'에 대한 자찬에 있는지 많이들 헷갈렸던 듯하다. 예전에 자화자찬은 지금처럼 단순히 제 자랑의 의미로만 쓰는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와 긍지를 담았다. 살아있는 정신의 표정이 있었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