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썩은 나무 등걸 뒹굴다 멈춘 자리
꽃눈 틀 나무들의 밑불이 되어주려
낮추고
더 몸 낮추어
묵묵히 때 기다리다
아래로 더 아래로 뿌리까지 내려가
단단한 맨몸 헐고 다 썩힌 거름되어
또 누구 살이 되려고
초록 길을 더듬나 /이숙례
겨울나무는 왠지 쉬는 것 같다. 활엽수에 한해서지만, 무성히 길러 품었던 잎을 다 떠나보내고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은 똑 묵상의 빈 몸 같다. 그런 모습 때문에 겨울나무에서 기도며 묵상의 분위기를 읽어낸 시가 많았나 보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나무 내부에서는 쉴 리가 없다. 꽝꽝 언 땅 저 속에서도 생명의 일은 휴식 없이 이어진다니 말이다. 하물며 소임 다하고 '썩은 나무 등걸'도 다시 '꽃눈 틀 나무들의 밑불이 되어주려'고 한껏 몸을 낮춰 또 가지 않는가. '아래로 더 아래로' 계속 썩으며 내려가 결국 뿌리에 닿아 어떤 존재의 거름이 되는 일. 그처럼 나무에는 기꺼이 다 주고 가는 성자의 모습이 있다.
어쩌면 1월도 그런 밑불의 때 같다. 계절의 방학 같은 삼동(三冬) 가운데서 깊이 썩다 보면 밑불로 지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 거름이 되면 더 싱싱한 새봄을 키우려니.
/정수자:시조시인 /그림;이철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