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우와 석주명
조선 후기의 서화가인 남계우(南啓宇·1811~1888)는 나비 그림을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그의 집은 한양 도성 안 당가지골(현 한국은행 뒤편)에 있었다. 집에 날아든 나비를 평상복 차림으로 동대문 밖까지 쫓아가 기어이 잡아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남계우는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림을 그렸다. 실물을 창에다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지탄(柳枝炭)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했다. 노란색은 금가루를 쓰고,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워낙 정확해서 근대의 생물학자 석주명(1908~1950)은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분해낼 수 있었다.
남계우의 그림 속에는 남방공작나비란 열대종까지 있었다. 석주명은 훗날 남쪽 지방에서 이 나비를 잡아 남나비의 그림이 실물을 보고 그린 것이었음을 입증했다. 석주명은 남계우의 나비 그림이야말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마루야마(圓山應擧·1733~ 1795)의 '곤충도보(昆蟲圖譜)'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국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이 석주명이 소장하고 있던 남계우의 나비 그림 10폭 병풍을 감상한 후 역시 10폭 병풍에 시로 써준 '일호화접도행(一濠花蝶圖行)'이란 작품이 최근 공개되었다. 일호(一濠)는 남계우의 호다. 석주명 선생의 따님인 석윤희 교수가 보관해왔던 귀한 작품이다. 위당은 자신보다 15세나 아래인 석주명의 나비 연구에 깊이 감동하여 그를 위해 장편 한시를 써준 것이 '담원문록(擔園文錄)'에 전한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장시는 문집에도 빠진 것이어서 더욱 귀하다.
위당은 이 작품에서 남계우의 그림을 한폭 한폭 꼼꼼히 묘사한 뒤에 그의 그림이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와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의 시문과 다산 정약용의 총서로 이어진 남인과 소론의 '박학(樸學)', 즉 실학을 잇는 가치 있는 작품임을 밝혔다. 석주명에게 써준 다른 시에서는 다른 사람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비 연구에 몰두하여 세계적인 학자가 된 석주명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석주명은 제자들에게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를 10년 이상 꾸준히 하면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그의 '조선산접류(蝶類)분포도'는 1940년에 영국왕립학회의 의뢰를 받아 뉴욕에서 인쇄되었고, 생물지리학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