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37.141114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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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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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기본 범주인 때와 장소,
곧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는
크게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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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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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실제로 체험하는,
하느님께서 ‘위에서’ 개입하시는 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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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리적 차원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실재’로서 현존하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자리로서의 공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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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를
우리는 ‘사건’으로서 체험하게 된답니다.
.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현존은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이 세상에 매이지 않는 사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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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와
‘사람의 아들의 때’를 기다리는 이는
그 나라의 가치를 철저하게 실천하며
세상의 삶을 초월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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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참된 종말론적 윤리는
결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맹목적 두려움에 따른
포기를 뜻하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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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신의 삶의 자리와 일상이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때와 장소가 되도록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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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종말론적 차원을 늘 간직하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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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