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레 2014. 11. 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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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
             안경을 두고 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늙은 시인의 사랑 얘기 들려주고 싶어
             쥐 오줌 얼룩진 절판 시집을 두고 왔다
             새로 산 우산도
             밤색 스웨터도 두고 왔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을 몰라
             거기
             나를 두고 왔다  /손세실리아

 

   섬은 외로워 보이지만 사랑을 늘 묵상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섬은 사랑을 잃고 난 후의 통절한 울음 같기도 하고, 섬은 사랑 혹은 기다림의 자세 같기도 하다.
   연인이 여기 있다. 섬을 떠나 뭍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 있고, 그를 다른 곳으로 떠나보낸 후 섬에 남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떠나오는 이는 섬에 이것저것을 두고 떠나온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던 안경의 애틋한 시선을 놓아두었다. 사랑을 노래한 낡은 시집 속 언어들을 놓아두었다. 궂은비가 내리는 날에 받쳐 들 우산을 놓아두었다. 털실로 두툼하게 짠 스웨터도 바람 부는 날에 입으라고 놓아두었다. 끌리는 눈빛과 거짓 없이 수수한 고백과 다정했던 날의 생활을 두고 떠나온다. 아니 그리하여 떠나오지 못한다.
   떠나온 사람도 홀로 남은 사람도 섬이 된다. 그러나 사랑을 기억하는 한 섬은 섬이 아니다.   

    /문태준; 시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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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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