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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男生日戱題(정남생일희제)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
富家生女百憂集(부가생녀백우집)
부잣집은 딸을 낳아 온갖 근심 모여들어도 가난한 집은 아들 낳아 만사가 만족일세. 거긴 날마다 천전을 써 힘겹게 사위 대접하지만 나야 경전 한 가지를 아들에게 읽히면 그만이지 나는 지금 아들만 낳고 다행히 딸은 없는데 큰놈은 글을 알고 작은놈은 인사를 잘하네. 뉘 집에서 딸을 길러 효부를 만들었을까? 아들을 보내 거만한 사위 만들어야지. 집 지키고 취한 이를 부축할 일 걱정 없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낙을 훗날에 누리련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 ~1618)이 둘째 아들 생일날 엉뚱한 시를 썼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저놈을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되는 순간, 백사 특유의 낙천주의에 두둑한 배짱이 가만있지를 못한다. 아무 걱정 없다. 지금 어느 부잣집에서 딸을 고이 기르고 있을 테니 그 집 데릴사위로 보내자. 사돈집은 내 아들 모시느라 고생 좀 하겠다. 백일몽이라도 꿔야 자식 키울 걱정의 무게가 덜어진다. 백사는 시로도 웃음을 선사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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