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
.
예수께서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가리켜 보이고 계신답니다.
.
예수님께서 걸어가기 시작하신 여행길은
역사의 나아갈 길을 바꾸고 싶지 않는 자들과
심각한 대결을 빚을 거랍니다.
.
사마리아인들도
예수께서 지기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계심을 알아듣지 못한답니다.
.
또한 제자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복음화의 첫 번째 장소가운데 하나가
사마리아가 되리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한답니다.(사도1,8)
.
.
.
욥기에서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자신의 고통을 탄식하고 있답니다.
.
고통은 더해 가고 죽음은 다가오지 않아,
생명은 마치 하느님께서 내리신 끝없는 저주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심정이 처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 욥처럼
극단적인 불행이 휘몰아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삶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짐으로 다가오는 시기를 겪는답니다.
.
그럴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답니다.
.
.
.
“기도 안에서 진리를 실행해 보자. ‘주님, 제가 존재해도 됨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에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존재해도 된다는 것, 숨 쉬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선물이고, 이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이것이 삶을 진실하게 하고 해방시켜 준다. 좀 더 순수하고 깊이 있게 감사할수록, 그리고 힘든 일, 쓰디쓴 일,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삶의 근본 감정은 더욱 깊이 자유를 느끼게 된다.”<가톨릭 신학자 과르디니 ‘기도와 진’리>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