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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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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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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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 사도는
가장 근본적인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에
귀 기울여 올바른 대답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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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대답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려면
더욱 정화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복음에서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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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몰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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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이
당신의 안락과 영광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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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삼 년, 예수는 설교를 하면서 줄곧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급기야 큰 시련에 부딪쳤습니다. 곧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이 그것이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리고 제관들로 이루어진 사두가이들은 예수를 없앨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고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는 것 외에 또 무슨 길이 있었겠습니까? ‘도피해서는 안 된다. 사명을 완수할 따름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중략)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는 것, 이것이 예수의 마음이었습니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