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95.140623 이웃을 중심에 둔 내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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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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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은 사뭇 다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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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판단기준은
흔히 인간의 판단기준과 같지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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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가혹하게 판단하는(티)사람은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고
더없이 악하다는 사실(들보)을 모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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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들보’와도 같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공동체 안의 이웃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자들의 변화를 촉구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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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성찰의 순간에도
교묘히 움직이는 우리 안의
자기중심주의를 보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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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찰’이 단지 이웃을
‘비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나 잦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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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철저히 살피고
‘뚜렷이 보는’ 힘을 얻은 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머물러 생각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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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는
“네가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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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완전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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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제의 잘못을
합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가?’
하고 성찰할 때에는
형제는 여전히 객체로 남아 있는 가운데
‘나의 옳음’만이 관건일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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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음은 ‘나의 옳음’이 아니라
형제를 ‘중심’으로 초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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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형제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사가 된답니다.
. 성체성사에 따른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은
무엇보다 교묘한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함을 깨달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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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행위라 할지라도
이웃을
중심에 두고 진심으로 그의 처지에서
그의 치유와 다시 일어섬을 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체성사에 따른 삶이 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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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