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中卽事 (도중즉사) 길을 가다가
草軟牛呼犢(초연우호독) 풀이 연해 소가 송아지를 부르고
溪深鸛啄魚(계심관탁어)냇물이 불어나 황새가 물고기를 쪼고있네.
靑林望不遠(청림망불원) 푸른 숲이 멀지 않으니
定有好村居(정유호촌거) 틀림없이 좋은 마을 나타나겠지.
小犢方含草(소독방함초) 송아지는 풀을 뜯고
大牛方飮川(대우방음천) 어미소는 냇물을 마시네
牧童無一事(목동무일사) 할 일이 없어진 목동은
蘆笠蓋頭眠(노립개두면) 풀잎모자 덮어쓰고 잠을 청하네.
/권용정
19세기 시인 소유(小遊) 권용정(權用正·1801~1861)이 길을 가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을 시로 읊었다. 녹음이 지어가는 무렵이면 나그네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한 풀을 찾았는지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르고, 불어난 냇물에서는 황새가 물고기를 잡고 있다. 유난히 짙푸른 숲이 시야로 들어오니 살기 좋은 마을이 곧 나타날 것만 같다. 또 한 곳에서는 풀을 뜯고 있는 송아지 곁에서 어미 소는 물을 마시고 있다. 소 치는 아이는 이제는 할 일이 없어졌다. 갈대로 만든 모자를 눌러쓰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 먼 길 재촉하던 나그네의 바쁜 마음이 갑자기 한가로워진다. 잠깐 걸음 멈추고 들녘에 감도는 평화로운 풍경에 젖어든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그림:유재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