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냄새
시골집 뒷마당에서 빨래를 거둬 안고 들어오며 서울 며느리,
아까워라 햇빛 냄새! 빨랫줄 허공에 혼자 남아 있겠네.
빨래 아름에 얼굴 깊게 묻었다. 향기로운 탄내, 햇빛 냄새! /정진규
서랍 같은 가슴 속에서 어떤 감탄이 순간 확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경이(驚異)가 샘솟는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가. 바스러질 듯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빨래를 거둬 안고 들어오며 툭 던진 서울 며느리의 말이 일품이다. "아까워라 햇빛 냄새!"라니. 마치 햇빛을 퍼내거나 덜어 내 쓴다는 듯이 아깝다니! 햇빛 한복판에 서서 뱉은 탄복의 말이 속기(俗氣) 없이 썩 풋풋하다.
정진규 시인은 한 시에서 빨랫줄에는 "구름도 탁탁 물기 털어 제 몸 내다 말리는구나"라고 썼는데, 우리네 고향집 널따란 마당 한쪽에 너무 팽팽하지 않게 살짝 아래로 처지게 늘어뜨려 매어 단 빨랫줄 하나가 오늘은 보고 싶다. 빈 하늘에 긴 빨랫줄 하나, 그 게으른 외줄이 보고 싶다. 젖은 빨래처럼 나도 빨랫줄에 널려 볕도 쬐고 바람도 좀 쐬면서 한나절을 살았으면 좋겠다. /문태준 :시인/그림:유재일/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