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송찬호
봄이 와서 나비를 공중에 풀어 놓고 있다. 나비는 날개를 접었다 펴며 공중을 난다. 마치 접개식의 주머니칼에서 칼날을 빠르게 뺐다 접어 넣듯이. 그러나 나비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난다. 위아래 좌우 양쪽으로 울퉁불퉁하게.
그 비행의 리듬과 궤적이 어떻든 나비는 꽃으로부터 꽃에게로 날아간다. 보행도 당당히. 조금은 놀기 좋아하는 한량처럼. 그러다 나비는 백주(白晝)에, 목격자들이 있거나 말거나, 건달처럼, 아주 능란하게 꽃의 안주머니에서 꽃의 꿀을, 꽃의 지갑을 훔쳐낸다.
꽃과 나비의 관계를 이처럼 '칼'과 '지갑'을 동원해 쓴 시인은 지금껏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비의 도둑질은 눈감아 줄 만도 하다. 꽃을 상하게 하지 않고 꽃의 중심을 은밀하게 훔쳤으니까. 마법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다. /문태준 :시인/그림: 유재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