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미래사 가는 길에 내 생만 한 꽃을 만나
스치는 눈인사에 절이 한 채 생겨나서
심부름 까마득 잊고 소풍 속에 노닌다. /서우승(1946~2008)
어딜 가도 자리만 깔면 소풍 같은 꽃철! 봄은 소풍의 계절이다. 저 많은 꽃이 연일 피고 지며 부르는데 귀 닫고 눈 가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덩달아 달뜬 마음 부릴 데 찾아 나서는 걸음이 분주하다. 호기롭게 일과 작파하고 노닐지는 못할지언정 벚꽃 번개라도 한번은 맞고 가는 게 봄에 대한 예의 같다.
그러니 꽃철에는 심부름도 소풍이 아니랴. 특히 '미래사'로 간다면 더 놀라운 소풍! 절 이름이 하필 미래사라니, 미래로 심부름 나서는 걸음이 참으로 길겠다. 그런 길이 아니라도 아무 데나 가다가 눈 맞은 자리에서 그냥 노는 게 진짜 소풍일 터. 하물며 '내생만 한/ 꽃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어쩌면 우리 삶도 이승으로 잠시 나온 심부름, 멀리 보면 한때의 찬란한 소풍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삶을 소풍으로 읽은 시편이 있었지만, '심부름/ 까마득 잊고/ 소풍 속에' 노니는 모습이 똑 동자승 모양 천진하다. 온 천지가 눈 맞추는 꽃난리 속, 그런 소풍 한번 놀고 가야겠다.
/정수자 :시조시인/그림:박상훈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