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서는 일은 무엇인가. 있던 자리에서 뒤나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는 일은 무엇인가. 나서지 않고 내놓는다는 것 아닌가.
물러서면 해변에 어지럽게 난 발자국이 보일 게다. 바다가 통째로 제대로 보일 게다. 문정희 시인은 시 '짐승 바다'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내 안에서 일어서고 / 내 안에서 무너지는 / 천둥의 깊이'라고 썼다. 물러서면 물결의 높이와 수심(水深)이 보일 게다. 하나의 바다인 나의 충동과 강렬한 움직임이 보일 게다.
앞으로만 구르는 바퀴에는 물러섬이 없다. 물러섬을 모르는 이는 오로지 매섭고 사납기만 하다. 헤드라이트를 켠 그의 눈에 길가에 핀, 키 작고 연약한 꽃이 보일 리 없다. 오토바이 바퀴처럼 다만 질주(疾走)하는 이는 금속성 굉음처럼 섬뜩하다.
/문태준:시인 /그림: 유재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