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관악기처럼
우주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김수영
문득,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왜 여기 이렇게 서 있지? 하는 간단(間斷)의 시간과 마주할 때가 있다. 생의 목적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어 묻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은 과연 아름다운 일인가? 그렇지 못할 때 피곤이 온다. 하루의 나머지 시간 혹은 나머지 생 전체가 쓰디쓴 표정으로 눈을 '깜짝거리리라'. 너는 잘못 살고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이 빠져나간 나는 생의 의미가 없다. 나 없는 나. 주인 없는 나. 의식이 빠져나간 나. 헛것의 삶. 그때 필요한 것이 산(山)으로 상징되는 신비의 대상, 기대고 싶은 대상이다. 자연의 오묘 심대한 질서를 '눈을 가늘게 뜨고'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 내어 불러본다. 우주와의 호흡이다. 그때 비로소 내가 우주의 악기임을 실감하게 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