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에는 눈이 참 많이 쌓였다. 그렇게 눈보라 치던 고샅도 가래떡 흰 김이 오르면 불현듯 훈훈해졌다. 눈을 밟으며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는 날은 몸 마음이 새록새록 하얘지곤 했다. 그때의 '뽀득뽀득', 그 순결한 소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도심의 눈은 지상에 닿자마자 시커멓게 변하는 무슨 오욕(汚辱)처럼 빨리 치워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
그래도 한밤의 눈은 여전히 축복이다. 낮의 허물을 다독이는 밤의 정화(淨化)다. 모든 것을 덮는 하늘의 용서다. 그래서 아침이면 악다구니 세상도 '아기의 젖니가 돋듯' 새로 태어난다. '나무들 하나같이 뿔 고운 순록이 되'는 눈 내리는 밤, '한잠 든 마을'의 순결한 평화 속을 걷고 싶다. 한 마리 순록이 된 양 두고 온 시간의 숲 어딘가로―.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