計程(계정) 노정을 따져보니
計程今已到家中(계정금이도가중)
노정을 따져보니 지금쯤이면 벌써 집에 도착하여
事事眞如眼覩同(사사진여안도동)
일마다 똑같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겠지.
稚子出門欣笑色(치자출문흔소색)
어린 아들은 문을 뛰쳐나와 좋아라고 웃고
老親臨牖喜愁容(노친임유희수용)
노친께선 문을 열고 기쁜 내색 반에 걱정이 반일세.
慰來慈念長思遠(위래자념장사원)
멀리 있는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道得剛腸善處窮(도득강장선처궁)
궁지에서 잘 견딘다고 다부지게 말씀드리네.
神去不知山水遠(신거부지산수원)
산수가 가로막혀 길이 멀어도 넋은 잘도 다녀오니
夕天飛雪獨吟風(석천비설독음풍)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에 나 홀로 시를 읊네.
/심로숭(沈魯崇·1762~1837)
정조 순조 연간의 문인 심로숭이 유배지인 경상도 기장에서 고향을 그리며 쓴 시다. 정조의 사망 이후 권력자에게 밉보여 몇 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다. 날이 추워지자 갈 수 없는 먼 고향, 그곳의 가족들이 더 그리워진다. 몸은 기장에 있어도 넋은 훨훨 날아 산과 물을 건너서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반가워하고 걱정하는 가족들,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눈앞에 있듯이 떠오른다. 위로와 당부의 말도 입에서 맴돈다. 그러나 퍼뜩 망상에서 깨어나면 몸은 여전히 유배지에 있고 하늘에는 눈이 펄펄 날린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