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장 파는 골목
노인의 손끝에서 이름들이 피어난다.
이름 밖 나뭇결이 깎여나는 목도장
움푹 팬 골목길 안도
제 몸 깎고 피어난다.
캄캄한 음각 안에 웅크려 있는 고독
나 아닌 것들이 밀칼에 밀려날 때
촘촘한 먼지 속에서
울고 있는 내 이름.
노인의 이마에서 전깃줄이 흔들리고
골목에 훅, 입김 불자 길들도 흩어진다.
도장에 인주를 묻혀
붉은 해 찍는 저녁. /박성민
11월은 골목 같은 달이다. 겨울의 길목이기 때문인지, 골목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오가는 어깨들이 유독 구부정해 보인다. 일찍 찾아드는 어둠에 발소리들도 총총 시리다. 골목은 그런 삶의 표정과 곤때들이 더 끈끈히 담겼던 곳인데, 그간 개발의 이름으로 많이도 치워버렸다.
그런데 간혹 옛집으로 가듯 아득한 골목이 있다. '목도장' 할아버지가 지키는 여일한 길목, 그런 목에는 묵은 시간의 켜가 고스란히 쌓여 있다. '캄캄한 음각 안에 웅크려 있는 고독'을 딛고 오롯이 피어나던 이름들. 목도장에는 급한 사정이 꽤 있었으니, 누구나 그런 도장 두엇쯤은 갖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목도장은 쓸모가 점점 없어지고, '붉은 해'도 한 해의 도장 찍을 채비로 더 붉어진다.
/정수자: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