返家 (반가) 집에 돌아오다
秋歸人亦返(추귀인역반) 가을이 돌아와 사람도 돌아와 보니
秋水遶柴門(추수요시문) 가을물은 사립문을 감싸고 있구나.
失學兒憎面(실학아증면) 공부를 놓친 자식놈은 낯짝이 밉상이고
濱飢妻瑣言(빈기처쇄언) 굶주림에 지친 마누라는 잔소리를 늘어놓네.
此曺終待恤(차조종대휼) 이들을 끝까지 보살펴야 하지마는
吾道固難飜(오도고난번) 내 갈 길은 정녕코 뒤집기 어려워라.
更憶淵明子(갱억연명자) 다시금 도연명을 그리워하노니
能知運所存(능지운소존) 운수에 달린 인생임을 잘도 알았네.
/노긍(盧兢·1737~1790)
18세기의 전위적 작가 한원(漢源) 노긍의 시다. 그는 기괴하고 발칙한 착상을 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충청도 청주 사람으로 가난한 선비라 서울의 대갓집 서당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생계를 유지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그를 반기는 것은 집을 둘러싼 냇물뿐, 꾀죄죄한 코흘리개 자식놈들과, 반기기는커녕 잔소리부터 늘어놓는 마누라다. 가장이 집을 버리고 떠나 있으니 자식들이 공부할 리가 없고, 아내가 궁기를 면할 까닭이 없다. 처자식 생각하면 훈장이고 선비고 시인이고 다 팽개치고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런다고 꿈꾸던 인생을 포기해야 할까? 날은 추워지고 시인의 고민은 깊어진다./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 조선일보/그림: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