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리가 오는 즈음에는 들판에 가서 한참 둘러볼 일이다. 그만한 성지(聖地)가 따로 없다. 조금씩 식어가는 태양의 온도, 펄럭이는 바람. 싱싱한 빛을 등에 지고 어깨동무하여 못자리로 들어가던 물길은 다 말랐다. 개구리, 뱀, 메뚜기, 뜸부기 등속의 흥성하던 뭇 생명들은 또 다 어디로 깃들여 갔단 말인가. 뭇 처녀들의 가슴을 흔들던 푸른 이마의 청춘들, 단단한 팔뚝과 '꽝꽝한 이빨'의 웃음들은 다 어디로 가고 무너진 논두렁, 말라 비틀린 물꼬만이 백골처럼 누웠다. 들판이 그러하듯이 인생이 그러한 것이다. 오월 난초와 유월 목단, 팔월 보름, 시월 단풍을 다 접고 일어날 시간. 무서리의 가을이다.
'휘파람' 불던 '천둥 번개의 사나이들/ 어디로 갔나' … 이 구절만으로 이 시는 천둥 번개의 시가 되었다! 나는 과연 천둥 번개의 사나이였는지. 나는, 다시, 천둥 번개의 사나이 하나를 데리고 휘파람 불며 등 뒤에 아름다운 들판을 남긴다. /장석남 : 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