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시 두레 2013. 10. 1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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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씨

 

         아주까리씨 하나를 입에 넣고 잘게 씹는다.

         입에서 한 무더기 꽃이 피어난다.

         입은 점점 더 커져 풀무가 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생각이 피워 올리는 폭포,

         한 톨의 아주까리씨가 풀무를 돌린다.

         꽃의 너울 속으로 넘나드는 바람의 혼절한 모습,

 

         지나온 역을 향해 흔드는 손짓이

         내 속에 다시 바람의 씨를 흩날린다.

         바람은 언제나 늙은 꿈의 주름을 지우나니

             /김재혁

 

   꽃을 보자고 심은 이른바 꽃사과 나무가 한 주 있다. 그런데 이 나무에 어쩌자고 열매가 맺어서 하나를 입에 넣어 보았다. 맙소사, 제법 사과 맛이다. 어쩐지 미안하다. 꽃에게 양보한 사과라니. 미안한 가을이다.

 

   나무는 뿌리와 잎사귀와 몸뚱이로, 그리고 그가 가진 이목구비로 하늘과 밤과 낮을 모아서 씨를 만든다. 그러니 씨 안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있는 셈. 내가 맛본 것은 하늘의 맛, 밤과 낮과 꿈의 맛이었던 것.

 

   '아주까리씨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더니 되레 생각이 깨어난다. 생각은 제 단단한 깍지를 깨고 나와 이리저리 피어난다. '입'은 '꽃'이 되고 또 점점 커져서 생각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가 된다. 불꽃 속에서 혼절하는 바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나온 역(시간)'을 향해 흔드는 손짓도 내 안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였으니 매일매일 우리는 '혼절한 바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별 없는 새 만남이 어디 있으랴! 아주까리씨가 불꽃으로, 손짓으로, 바람으로 번신(翻身)하는 과정이 상쾌하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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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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