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

외통넋두리 2008. 6. 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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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1556.001023 / 익사​

바람이 좋다. 바다가 보고 싶다. 들판을 달리고 싶다. 논두렁을 걷고 싶다. 그 날도 동무와 함께 여의봉 꼬챙이를 하나씩 주워들고 세상이 좁은 듯이 휘저으며 깡충거렸다.

가득가득 채운 들판의 벼 포기, 이 사이로 잠깐씩 반짝이는 물그림자,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가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소리, 큰 봇도랑을 가득 채워 퀄퀄 흐르는 봇물, 오월의 들판은 생동하고 가없이 넓게 짓 푸르다. 이렇듯 염성 벌은 사발에 물 담은 듯 가득하여 넘실거린다. 앞날의 모든 것이 약속되어서, 모든 생물이 하늘을 향하여 손짓하며 땅을 딛고 뻗어나간다.

약동의 계절 그 하루 한나절이다. 봇도랑을 넘나들며 물고기와 함께 노닌다. 디디는 발자국소리를 빨아들이는 탄력과 부드러운 촉감을 더해주는 논두렁에 반해서 우리는 봇도랑 양 둑을 번갈아 건너뛰며 놀이했다. 우리도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땅을 딛고 뛰었다. 봇도랑은 하늘이 준 우리들의 뜀틀이며 융단 이였다. 물 구비 진 곳까지 고기떼와 함께 했다.

우리가 구비를 돌았을 때다. 우리는 서로를 잡고 댕기며 얼굴을 마주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듯이, 뜀틀도 걸음도 일순에 멈추고 말았다. 봇도랑 속에 흰옷이 걸려서 너풀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엎드려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몇 발작을 뒷걸음치다가 누구의 신호랄 것 없이 뒤돌아 달렸다. <여의봉>은 저 멀리 논바닥에 철버덩 떨어 졌다.

동네분이 몰려나오고, 시신은 곧바로 둑 위로 올려졌다. 신원도 확인됐다. ‘연만하신 할아버지가 불편한 다리를 무릅쓰고 들바람을 쏘일 겸 물고도 볼 겸해서 나왔다가 변을 당하셨다’는 것이다.

개구리도 뛰어넘고 방아깨비도 뛰어 넘는 이 봇물에 빠지다니! 옛날을 생각하여 오만을 부렸을까. 물고기가 탐이 나서 잡아보려 하셨을까? 아니다. 그는 자연이 베푸는 봄날의 기운을 받을 그릇이 헐었고, 그래서 흘러 나갔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다. 아예 앗아갔기 때문이다.

노인은 운명(殞命)의 순간을 흙과 물과 풀과 고기와 함께 했다. 우리는 솟고, 노인은 잦으며 함께 삶을 노래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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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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