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

외통프리즘 2008. 9. 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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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6.020622 급수


시골 친구네 집의 광속에서 보물 캐듯이 조심스레 훑고 있다.


퀴퀴한 냄새를 뿜는 곰팡이 쓴 ‘법제대의’책, 난생 처음 보는 책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내용이 있어 벌써 무겁게 내리 누르면서 내 마음을 끌고 있지만 빌려주는 책 주인에게 내 무지를 암묵리에 들어내어 놓았으니 굳이 초들어 물을 수 없어서 얼굴만 쳐다보다가 말고, 내용을 순간에 독파하고 싶은 욕심이 불현듯이 인다.


곰팡이에게 빛 보여 못살게 하니 책이 오히려 누렇게 떠 질겁한다.


매캐한 먼지 날리는 헌법 책, 딴은 기와집을 지을지 토담 돌집을 쌓을지 아니면 초가삼간을 엮을지 그도 아니면 초막을 두를지 집주인이 정할 일이니 주인의 마음을 읽으면 될 것인데 주인인지 아닌지를 따질 일이 더 어렵겠다.


책은 먼지를 푹석 피워 갑자기 나를 멀리 하려 한다.


끈적끈적한 법전, 또한 거미처럼 무언가를 엮어서 처 놓아야 범접(犯接)을 않을 것인데도 그렇지 못하여 나같이 무식한 하루살이는 반나절도 못살고 걸려들고 힘센 참새 떼 같은 실력자는 아예 통째로 뚫고 나가니 걸리는 놈은 고만고만한 것이기에 모두의 재량(才量)크기를 재어보고 나설 일이다.


끈끈이가 싸여서, 그나마 있는 내 숨구멍도 메워서 날 넘보는구나!


먹고사는데 무슨 거창한 구조물이 필요하고 잡다한 얼개가 있어야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생존 경쟁의 변두리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치열히 치고받는 패거리의 어느 한쪽에 끼어있지 못하여 차례 질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행여 그들이 싸우다가 떨어지는 아람이라도 주어 먹을까하고, 또 기걸스레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있으면 주어먹을 셈으로 그들이 요구하는 그물을 지어 무언가 걸려 들 얼개라도 엮을 요량으로 진작 만져보지도 못한 종이뭉치를 한 보따리 들고 나왔다.


이것들이 내게 줄서는 법을 알려주고 빠질 크기도 가늠하게 하고 아름 톨 밑에 서있게 할 것이란 믿음이 들어 이렇게 싸들고 왔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그럴듯하게 산다고 자족할 이는 아무도 없을 성싶다.


누구나 다 자기의 삶이 그럴듯하지 않게 느껴지기에 그럴 것이고, 그래서 무진 애를 쓰면서 그럴듯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련만 이 마당에서 나는 언제나 자신이 없고 주저하기만 한다.


그 그럴듯한 삶이 무한한 욕망의 궤도이니 쉼 없이 구르며 이탈(離脫) 없이 이어갈 뿐이다. 그럴듯한 삶 속에 숨은 최후의 보루, 즉 살아있는 한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심는 일일 텐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으면서도 여전히 먹을 것에 대한 집념으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으니 산 것이 아니고 연명하는 것인가 의문을 갖게 하고,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갖은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곰팡이와 씨름하려하고 먼지와 어깨동무하여 거미줄처럼 가늘고 끈끈해 지려한다.


한없이 작아지면서 끈적이는 내 삶의 밑바닥이 빛을 보고 언젠가 아람으로 익을 날을, 내가 아람이 될 수 없으면 떨어질 아람아래 줄 설 슬기를 얻을 날을 만들려한다.


곰팡이가 햇볕을 받아 없어질 때 그가 살던 터전은 비로써 그 값을 다할 것이다.  곰팡이 미물의 움직임이 언제 절대적 줄서기의 틀인 이 책에서 사라져 나로 하여금 집으로 마을로 마침내 세상으로 넓혀서 햇빛을 보게 할 것인가?


곰팡이야 네 가련한 신세를 한탄 말고 내 화려한 빛의 발아래 산 듯 죽은 듯 있다가 내가  빛을 본 뒤에 너는 네 삶의 터전으로 보내 주고 싶구나!?


허황하지만 움직여보자!


생존수단으로서의 지식 쌓기는 그 의미가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지적허기는 끝이 없고 늘 굶주림에 허덕이니 언제 ‘그럴듯한 삶’을 살 것인가? 모름지기 생전에는 안 될 것이다.


알면서, 무리에 쓸려 죽음의 언덕으로 달려가는 한 무리 속에 함께 달려가는 나를 보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나를 위한답시고 그 무리에서 이탈하여 홀로 선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전혀 다른 종으로 변하고 말 것 같은, 나의 지식 쌓기를 생존의 차원에서만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꽉 차 오른다.


종의 선택을 내가 하지 않았으니 순종하여 그 속에서 가급적 힘을 다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지적가늠을 인간의 기준으로 급수(級數)화해서 인간의 복지를 위해 일익을 담당한다지만 사실 그 급수가 절대자의 입장에서 모든 지상생물의 총화를 기준으로 보아 등급을 정한다면, 아마도 우리인간 지식의 등급은 급수에 들지 못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최저 생계의 수단으로만 이용돼야하는 섭리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리라.


거듭 생각하건대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그 군상 속에서 함께 뛰놀 수박에 없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으니 좋던 나쁘던 책과 씨름할 밖에 없다. 급수가 인간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되뇌고 있다.

 

태고 때부터 있던 미 대륙을 ‘발견’했다는, 자기중심적 사관과 문화적 기준으로 재단하기에 우리 안에 든 모든 지식은 곰곰이 생각하면 모순 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서양과 동양, 일부변경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명명(命名)이 하나같이 인간적이다. ‘발견’자가 아니라 ‘몰라본’자임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기록자가 그들이니 당연한 결과이지만 생각은 여기까지 미쳐서 해야 하련만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정한 모든 것도 사람기준임을 알고 한계를 인식함이 마땅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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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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