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1 채

외통프리즘 2008. 9. 2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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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1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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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의 비탈진 언덕아래 푸새에서 금방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오를 것 같아 잠시 눈길을 쏟지만 개구리는커녕 미물인 지렁이조차 볼 수 없는 서울의 여름이다.

 

언덕진 시멘트 포장길의 틈새에도 용하게 뿌리를 내려 아무렇게나 엉켜 자란 이름 모를 풀들이 하늘거리며 저들의 터전을 지키고, 거기서 자란 아카시아 나무는 특유의 생명력으로 사람의 키를 넘어 좁은 골목으로 바람을 끌어온다.

 

단 한 그루의 이 나무가 살진 작은 잎을 푸르게 뻗어 메마른 내 눈동자에 그나마 물기를 넣어준다. 이 아까시아 나무를 빗겨 시선을 옮기면 희뿌연 연기만 가득히 망막을 흐린다. 어느새 건너편은 햇빛이 쏟아져서 보이는 모든 것이 회백색으로 변하였고, 집집마다 펼쳐 내린 차양은 녹아내리는 듯 늘어져있다.

 

서북향 우리 집의 손바닥만 한 마당이 간밤의 이슬을 머금어서 아직은 촉촉이 젖어있어서 그나마 생기를 돋우지만, 곧 한낮을 지나면서 여기도 내리 쬐는 열기에 불붙을 것이다.

 

오후의 끔찍스런 햇볕을 피하여 집 뒤의 축대 밑으로 숨어들 수를 미리 생각하고 있는 오늘은 일요일, 바로 손아래 인척 한분이 해마다 목돈으로 보탬이 된다는, 잠자리채를 만들려고 대나무를 마당 가득히 쌓아놓고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식구대로 와 매달려서 온통 법석이다.

 

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어름 할 수가 없다. 잠자리를 잡는데 웬 돈을 드리느냐는 옛날의 소박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일 게다.

 

여름방학을 넘기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고 잠자리를 잡는데 저 거창한 도구가 왜 필요한지 그것을 이해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서울.

도시의 생활에 어두운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분은 박장대소하며 앞으로 보라는 것이다. 과연 서울사람다운 발상이고 처신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의 곤충채집용구로 쓰일 잠자리채를 만드는 작업에 갓 이사 온 우리 집의 좁은 마당이 그래도 쓸모가 있었던지 마음 놓고 일을 벌이는 이 일이 나는 그지없이 이상하고 작은 곤충을 포획하기 위한 대규모의 장비가 내 눈앞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은 내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정서와 동떨어지기에 또한 어리둥절하다.

 

그는 그물에 몰린 고기떼를 건져 올리듯 포만감에 넘쳐 흥겹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내 의식의 저 밑바닥에는 묻어 감추었던 지난 일이 되살아나며 한껏 부풀려 눈앞에 전개된다.

 

잠자리의 투명한 네 잎 날개가 선명하고, 두 눈과 보이지 않는 발가락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지며 그 잠자리를 잡던 현장마저 또렷이 떠오른다.

 

얼굴에 돌진해 오는 듯, 저들끼리 충돌해서 떨어지기라도 할 듯, 새까맣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그 사이를 째어 나는 제비의 곡예에 황홀했던 그 때에 나는 아직은 생명에 대한 의식이 옅어서 잠자리를 놀이 감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 짓이 자꾸 크게 되살아남은 아마도 살아 움직인다는 것, 생명에 어렴풋이 눈을 뜨면서 내 멋대로 다루었던 잠자리가 가엾게 생각되면서 아렸던 마음 탓일 게다. 그 때 이후 그 잠자리의 그림자가 평생에 잊히지 않고 따라다닌다.

 

잠자리는 문밖에 나가기만 하면 어디서나 잡을 수 있었다. 사립문 설주에 금방 앉은 잠자리, 날개를 내리지 못하고 급히 떠오를 자세로 눈망울을 돌리다가 주위에 아무런 위험이 없으면 그 떼서야 날개를 축 늘어 내리고 깊은 잠에 빠지는 잠자리다.

 

깊은 잠을 잔다고 해도 한 두 숨에 깨기 때문에 이때 얼른 잠자리 잡는다. 용케도 이 이치를 알아차린 내가 잠자리 잡는데 이골이 났었다. 잡을 수 있는 시기를 정확하게 아는 이상 흥분과 짜릿한 맛은 있을 수는 없지만 잡는 그 순간의 생동감은 누구에게나 더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날려고 파르르 떨면서 몸부림치는 나래 짓과 몸짓, 이것은 생명의 약동에 다름 아니리라!

 

채 없이 잡아내는 이골 난 내가 이마져 진력을 내고 있을 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인간의 죄악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때는 이미 잠자리는 내 놀이 감이 될 수 없도록 내가 자란 뒤였다.

 

끔찍스런 그 일은 우리 앞마당에서 일어났다. 아직 내가 잠자리 잡기를 즐기고 무게와 힘의 약동을 잠시 맛보고 날려 보내려든 때 한 무리의 형들이 내 곁을 지나면서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준다면서 내 왼손의 검지 중지 약지 사이에 날개를 접어 끼운 잠자리 두 마리를 빼앗아서 따로 따로 나누어 갖고는 마른 볏짚 고갱이를 한 뼘 길이로 잘라서 빼앗은 잠자리의 꼬리에 짚고갱이를 꽂고는 나란히 서서 날려 보낸다.

 

멀리 날아 보낸 형이 이겼다며 다른 형에 꿀밤을 먹이는 것이다. 왜 그 형들이 직접 잠자리를 잡지 않았고 내 것을 빼앗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내어준 잠자리가 무겁게 날아가는 안쓰러움, 그지없는 그 잠자리 모습이 얼마나 진하게 느껴졌던지!

 

그 뒤로는 잠자리만 보면 날아다니는 것이나 나뭇가지에 앉은 것이나 모두 그 때의 그 잠자리 같고 좀 마음을 가다듬으려 고개를 흔들면 이번에는 그 후예(後裔)같이 생각되고, 나아가서는 그 잠자리의 형제 같은 생각마저 들어서 못 견디게 소스라치곤 했다.

 

내게 붙잡혔던 그 잠자리는 무거운 짚고갱이를 꼬리에 달고 힘겹게 날아다니다가 종국엔 이슬도 못 먹고 말라죽었을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우울했었다.

 

온전히 시골에서 자란 내게 잠자리는 내 동무고 내 말벗이고 내 꿈의 한 부분, 고향이었었는데 이제 그 잠자리가 포획 망 속으로 무더기로 빨려들 것이란 생각에 조금은 답답하다. 그러면서 서울에 잠자리가 없는 것이 오리려 위안이 된다.

 

놓쳐버린 잠자리의 뒷모습을 보는 짜릿한 맛도 없고 손끝에서 파들거리는 생명의 감촉도 못 느끼는, 요새 서울의 아이들은 가엽기 그지없다. 그림에서나 보고 고작해야 표본상자에서나 볼 수 있는 메마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다. 모름지기 흉내나 내고 멋이나 부리면서 다니는데 쓰일 잠자리채는 온전히 멋쟁이 어린이 용품으로만 될 뿐 어린이의 꿈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미채로 쓸 양이면 더더욱 형편없다. 매미는 눈을 높여 찾아보는 멋과 나무에 오르며 잡기 전에 날아갈까 마음 조이는 맛이 있어야지 그까짓 채로 잡는다면 짜릿한 맛은 어디서 얻는단 말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는 해거름에 완성된 물건을 싣고 점포로 향해 갔다. 나는 대형 살상의 장소 제공자가 되었고, 짚고갱이를 달고는 점점 쳐지며 힘겹게 나는 그 잠자리의 꼬리가 계속 눈에 알른거린다.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다가가며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팔을 뻗어서 엄지와 검지로 잡으려는 순간 훌쩍 날면서 내 손끝을 쳐 작은 무게를 느끼면 짜릿한 쾌감과 아쉬움을 전해주든 그 잠자리, 그런 잠자리 잡기가 내 전부의 세계인데 비록 가볍다고는 하지만 키를 넘는 장대에다 망을 씌워서 덮치는 멋없는 놀이를 위해 부모의 허리춤을 잡고 졸라 타낸 돈까지 들여 노는 서울어린이의 마음은 얼마나 거칠겠는가 싶다. 그 어린이들의 발목과 오금과 팔꿈치와 손가락마디에서 달그락거리는 쇳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어깨가 쪼여든다.

 

아카시아 나무사이를 뚫고 떨어진 햇빛이 동그라미를 그릴 때 풀섶에 앉아 있을 것 같은 잠자리는 보이지 않고, 눈을 돌려 올려보니 제비 한 마리 없는 새까만 전선만이 옛날 내 고향에서 누비든 제비의 궤적처럼 하늘에 가득하다.

 

언덕조차 삼킬 듯 헐떡이는 차 소리, 하나같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외치듯 와글거리는 사람소리, 천리 밖의 사람을 부르는 마귀의 울음 같은 귀 따가운 음향기기 소리만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일요일 오후다.

 

유달리 덥던 고향 늦여름 어느 날의 잠자리 잡기 놀이에 이끌리어서 오히려 시원하게 지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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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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