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56,070520 꿈4
어떻게 갔는지 어떻게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나는 젊은 여인과 만났다. 그 여인은 자기 동생이라면서 다른 여인을 내 곁으로 밀쳐냈다. 언니가 데리고 온 두 아기 중 흰 포대기에 싸인 아기 하나를 내 곁에 보낸 자기 동생에게 밀어놓고는 '이 아이를 네가 키워라.' 며 밀어 붙인다. 아기는 남자아기인지 여자아기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단지 잘 생긴 아기 같았다. 그리고 그 아기를 떠맡은 동생은 아기를 놓아둔 채 일어서서 내게 다가선다. 아마도 아기는 자기가 맡아 키우겠다는 심사인 것 같다.
키는 작지 않았다. 해말쑥한 얼굴이 갸름하고 두 눈이 평화롭게 깜박인다. 까만 머리가 치렁치렁 드리워서 흔들린다. 동생은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 짖고, 연록색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살짝 여미면서 내 팔을 당긴다. 아! 이런 사람이라면 내 나머지 삶을 맡겨도 되겠구나! 황홀하다. 왜 이제야 나타났는지 원망조차 스치는 순간에 지난 칠년의 세월이 아쉽고 억울하게만 느껴진다. 다음, 이 사람을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조차 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내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도 꿈인듯하여 이 꿈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깨질까봐 두려워하는 나, 이 순간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싶은 나, 나는 이토록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아내가 가고 난 뒤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꿈도 꾸어보지 못 했다.
꿈속에서도 이런 걱정을 하면서 그 녀의 오른손을 내 오른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어깨를 감쌌다. 부드러운 손을 뽑아낸 어께가 내 손아귀에 감미롭게 둥글다. 내가 생각해도 내게는 과람한 사람이다. 내가 무엇 하나 내 세울 것도 없으면서 이런 천사를 만날 수 있으니 기쁨이 넘친다. 내 나머지 삶이 보람차다. 둥실둥실 떠간다. 연두색 희망이 그녀의 치마폭에 쌓이면서 아롱지는 무지개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내가 가고난 후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우울하고 외로웠나 싶었다. 이 순간에, 아내를 보내고 난 뒤에 있었던 그 모든 슬픔과 외로움을 저 무지개에 싫고 있다. 나의 생에서 아내를 만난 때와 같은 만족감을 이 순간에 맛본다는, 그 것이 더욱 신기하고 흡족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염원의 무지개를 담은 영롱한 그릇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꿈속에서도 꿈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랐건만 꿈은 깨지고, 또다시 허무한 현실로 돌아왔다. 이 무슨 허망한 현실의 횡포란 말인가. 나는 꿈이라도 꾸고 싶은 데, 이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의 횡포가 야속하다. 어찌하여 나는 이토록 몹쓸 현실로 돌아와 살아야 하는가. 왜 이토록 잔인한 매질을 당해야 하는가. 아쉽구나! 아쉽구나! 내 옆에 섰던 그 사람의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음에 닿아서, 나를 이 시간까지 꿈속을 헤매게 하는구나. 차라리 노파라도 만났던들 나는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을. 꿈속에서, 내 마음속에서 죽을 떼까지 그녀와 함께 할 것을 다짐하게끔 한 그 녀의 아름다움이 어쩌면 미음으로 변할까 두렵구나. 깨어졌으니 다시 이어지는 꿈이라도 또 한 번 꾸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 꿈을 이어 꾸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모르겠다. 한량없으신 신명(神明)이시여! 바라건대 그 꿈을 다시 한 번 꾸도록 자비로이 은총을 내리소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꿈길에 든다. 오늘 밤에 그 꿈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