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외통넋두리 2010. 5. 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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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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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송수화기를 들고 거실에 놓인 쇼파에 누워있는 아내의 태도는 일상에서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눈이 그리로 가고 있다. 가끔 전화를 하다가 나와 맞닥뜨리지만 그 때마다 당당히 대화하는 아내, 대화 상대는 늘 친구거나 형제간이었다. 옆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거리낌 없었다.

늘 자연스럽고 소리 또한 높여가며 스스럼없던 전화솜씨가 오늘은 조용하게 낮은 목소리로 이어가고 있다. 힐끔힐끔 나를 보면서도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내 몸은 내 방으로 향하면서도 귀는 뒤로 뻗어 늘어지고, 걸음은 점점 더디다. 이럴 때 거실의 구조는 아내가 있는 안락의자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자꾸 돌다가 들어가는, 그런 구조였으면 좋겠고, 귓밥은 한껏 커서 아내와 대화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빠짐없이 들려 왔으면 좋겠다. 아내의 말 상대가 같은 병실에서 사귄 친구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내는 기쁜 소식이라도 전하려는 듯 눈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신나는 소리로 병동 친구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아내로서는 자기와 일치된 심리적 공감으로 남모를 교류를 더하고 있는, 그 친구가 아직 살아서 전화라도 주는 것이 마치 아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을 간접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안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웃음지은 응답으로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수화기를 쥔 손이 힘없이 꺾이고 있다. 송수화기의 무게가 천근의 무게를 손에 실었는지, 손은 팔과 함께 제 옆구리에 떨어뜨리듯 내리 꽂는다.

한 병실에 있던 아무개가 죽었다며 담담히 말하는 아내의 얼굴이 창백하다. 이번에는 또 누가 죽었는지를 알려주는 친구, 병동친구의 전화였다.

나는 석고상이 되었다. 대체 무슨 수로 아내의 저 처참한 심경을 어루만지고, 무슨 말로 아내의 저 가라앉은 마음을 위로 할 것이냐!

살며시 옆에 가서 앉지만 도무지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를 봄으로써 자기의 생명을 잇는 작은 기운이라도 빼앗겨서 그만큼 새나갈 것이라고 여기는지, 아니면 나한테는 더 이상 자기 삶에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것인지, 아내는 그대로 누어서 창문만 바라보고 눈길을 비낀다.

나는 지금 내 기억에서 살아지고 없는 아내와 함께 있던 그 환자들, 아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이들보다 못한, 그야말로 이름뿐인 아내이 동반자가 되어있다. 나는 지금 아내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될 수 없는, 그저 한 집에서 있는데 불과한 아내의 저주감이 되어서 아내 곁에 앉아 있는 것이다. 아내 옆에서 숨 쉬는 것조차도 미안하고 죄스럽다. 이 세상의 모든 일어나는 것들, 관계 지어지는 것 중에서 가장 비중 크고 가장 의미 있어야 하는 내가 아니던가! 그래서 더 죄스럽다.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내가 기꺼이 대신 앓겠다. 그렇게 되기를 빈들 이루어 질수 없는 나, 아쉬움과 억울함을 드러내는 아내의 한을 무슨 수로 위로할 것인가! 내 가슴이 터진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무엇으로 아내의 길을 위로하며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는가!

내가 손을 잡고 함께 간다고 한들 아내는 곧이들을 수 없고, 이미 내 관심의 영역에서 멀리 물러서 있다. 그대로 사그라질 수 없다며 억울해 하는 아내, 그 심사를 어떻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동아줄로 엮어서 나와 이을 것인가! 나는 점점 혼미해진다. 그리고 백치(白痴)가 되어간다. 자꾸자꾸 작아지면서 작은 점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러더니 어느새 나는 허공에 떠서 아무런 힘이 미치지 않는, 무색 무형의 나로 되는 것이다. 이 허공에 뜬 나를 끌어 내려서 땅에 발 부치게 하고 나를 아내와 이어줄 이는 없는가! 누가 내게서는 멀어지면서 병상의 친구들과는 한 마음 한 몸이 되어가는 아내를 그들에게서 떼어낼 것인가!

지금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길에 과연 아내의 눈빛은 언제 와 닿아서 반짝이며 나를 동일 것인가! 잡히지 않는 아내의 눈길, 청춘의 지난날의 눈길이 오늘에 그립고, 그 눈빛이 너무나 실했던 날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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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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