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임천(惟喜任天)
새벽 산책 길에서 신석정 시인의 ‘대바람 소리’를 여러 날 외웠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屛風)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門)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종일 무료하게 서실을 서성이다, 앉아 책보다 지쳐 누웠다, 잠들다 깨어나도 바뀐 것 하나 없는 고인 시간을 시인은 ‘그저 그런 날’이라고 썼다. 그러다가 서재에 놓인 중장통(仲長統·179~220)의 ‘낙지론(樂志論)’을 쓴 병풍 글씨에 눈길이 가서, 글의 맨 끝 구절인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란 구절에 눈이 딱 멎었더란 얘기다.
‘낙지론’은 자연에 둘러싸인 선비의 거처와 생활을 그려 보인 뒤, 안빈낙도의 삶을 선망한 글이다. 글의 서두가 ‘사거유(使居有)’, 즉 ‘만약 거처에 ∼이 있어서’로 시작한 것을 보면, 글 속 좋은 밭과 너른 집(良田廣宅)의 여유로운 삶도 가난한 서생이 혼자 그려본 꿈인 줄을 알겠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이 글을 읽고 쓴 ‘낙지론 뒤에 제하다(題樂志論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가난한 선비 살림 본래 곤궁하거니, 삶을 다만 하늘에 내맡김을 기뻐하네. 숲속 꽃은 재배함에 힘을 쓰지 아니하고, 못과 폭포 애초부터 만드느라 애씀 없다. 물고기 새 절로 와서 동무가 되어주고, 시내와 산 빙 둘러서 들창문을 지켜주네. 이 가운데 참 즐거움 1000권의 서책이라, 손길 따라 뽑아 보면 온갖 근심 사라진다(貧士生涯本隘窮, 卜居惟喜任天工. 林花不費栽培力, 潭瀑元無築鑿功. 魚鳥自來爲伴侶, 溪山環擁護窓櫳. 箇中眞樂書千卷, 隨手抽看萬慮空).” 청빈의 삶이라 해도 꿈마저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안정복은 방 안 책 1000권을 손 가는 대로 뽑아서 읽다 보면 자잘한 세상 근심이 간 곳 없어진다고 썼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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