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4년 3월에 선조가 불사(佛事)에 쓰기 위해 의영고(義盈庫)에 황랍(黃蠟) 500근을 바치게 했다. 양사(兩司)에서 이유를 묻자, 임금은 내가 내 물건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너희가 알 것 없다고 했다. 이이(李珥)가 어찌 이다지 노하시느냐고 하자, 어떤 놈이 그 따위 말을 했느냐며 국문하여 말의 출처를 캐겠다고 벌컥 역정을 냈다. 이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해서 안 될 말까지 했다.
계속 발설자를 잡아오라고 닦달하자, 신하의 간언에 위엄을 세워 입을 재갈 물리려고만 하시니 임금의 덕이 날로 교만해지고, 폐해는 바로잡을 기약이 없어 걱정이 엉뚱한 곳에서 생길 것이라고 다시 간했다. 임금이 고집을 꺾지 않자 “전하께서 이리하심은 신 등을 가볍게 보시어 벼락 같은 위력으로 꺾어 바른말이 들어올 길을 막자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신하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게 되면 전하의 총명이 날로 가려질 테니 ‘말 한마디로 나라를 잃는다(一言喪邦)’는 데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앞뒤로 다섯 번을 간했어도 임금은 ‘너희가 나를 가르치려 들어?’ 하면서 끝까지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나왔다. 이이는 임금의 태도에 실망하여 물러날 뜻을 품었다. ‘연려실기술'에 나온다.
글 속의 ‘일언상방’은 논어 ‘자로(子路)’에서 보인다. 정공(定公)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데 그런 것이 있습니까?” 공자의 대답이 이랬다. “말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임금 되는 것은 즐겁지가 않지만, 내가 말만 하면 내 말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즐겁다.’ 그 말이 옳아서 어기지 않는다면 훌륭하겠지요. 하지만 옳지 않은데도 어기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 것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임금의 위엄은 아무도 거역 못 하고 그대로 따르는 데서 서는 것이 아니다. 바른말에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바른 길로 돌아오는 데서 우뚝해진다. 임금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데도 그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임금은 날로 교만해지고 신하는 갈수록 아첨하게 되어 나라를 잃고 마는 것이 실로 잠깐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