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절강 선비 엄성(嚴誠)에게 부친 시다. "편히 앉아 가늠할 일 내려놓으니, 유유히 마음 절로 한가롭구나. 뜬구름 멋대로 말렸다 펴고, 나는 새 갔다간 돌아온다네. 육신과 정신 모두 적막하거니, 만상은 있고 없는 사이에 있네. 힘줄과 뼈 저마다 편안할진대, 맑은 기운 얼굴에 떠오르리라. 진실로 이 경지를 간직한다면, 지극한 도 더위잡아 오를 수 있네(宴坐息機事, 悠然心自閑. 浮雲任舒卷, 飛鳥亦往還. 形神雙寂寞, 萬象有無間. 筋骸各安宅, 淑氣登容顔. 苟能存此境, 至道可躋攀)."
식기(息機), 즉 득실을 따지는 기심(機心)은 내려놓겠다. 구름은 멋대로 떠다닌다. 새는 허공을 편히 오간다. 욕심을 걷어내자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근육의 긴장을 푸니 표정이 부드럽고 맑다. 그거면 됐다. 더 바라지 않겠다.
이색(李穡·1328~1396)도 '식기(息機)' 시를 지었다. "지난 일 잗달기 터럭 같건만, 꿈속에도 또렷이 생각나누나. 창 잡고서 유생(儒生) 쫓아 보냈다더니, 이 말이 자못 이치가 있네. 이사 가며 아내를 잊었다 함도, 어쩌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닐세. 이제껏 여러 해를 병 앓다 보니, 기심(機心) 가라앉힘이 약보다 낫네(往事細如毛, 明明夢中記. 操戈欲逐儒, 此言殊有理. 徙室或忘妻, 非徒偶語爾. 一病今幾年, 息機勝藥餌)."
송나라 양리화자(陽里華子)라는 이가 건망증이 몹시 심했다. 노(魯)나라의 유생이 비방을 써서 그의 건망증을 깨끗이 고쳐주었다. 병이 낫자 그는 벌컥 화를 내더니 창을 들고 자신을 치료해준 유생을 쫓아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건망증에서 깨고 보니, 지난 기억이 다 떠올라 내 마음이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네." 건망증이 심해 이사를 가며 아내를 두고 간 사람 얘기는 '설원(說苑)'에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 지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면 늙었다는 증거다. 건망증은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잊을 건 잊고 버릴 것은 버려야 맞는다. 이해와 득실로 분노가 일면 덜 익었다는 뜻이다. 잠깐의 인생에 탐욕이 끝없어 마음에 자꾸 지옥을 짓는다. 약을 찾는 대신 욕심을 내려놓자. 그러쥐려고만 들지 말고 나누고 베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