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이 '호산록(湖山錄)'에서 말했다. "간혹 시장통을 지나다가 좌상이나 행상을 보면, 그저 반 푼어치 동전을 가지고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끗을 붙들려고 다툰다. 수많은 모기가 한 항아리 속에 있으면서 어지러이 앵앵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或經過市鄽, 見坐商行賈, 只以半通泉貨, 哆哆譁譁, 罔爭市利. 何異百千蚊蚋在一甕中, 啾啾亂鳴耶)." 사람들은 한 끗 이익 앞에 수단 방법을 안 가린 채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이런 말도 했다. "부잣집 아이가 평생 글 한 자 안 읽고 그저 가벼운 가마에 올라타 유협(游俠)만 일삼는다. 한갓 월장(月杖)과 성구(星毬)를 들고, 금 안장에 옥 굴레를 하고서 삼삼오오 무리 지어 십자로 어귀를 배회하며 아침저녁 남북으로 휘젓고 다닌다.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늘어섰다. 애석하구나. 나나 저나 모두 허깨비 세상에서 허깨비로 살고 있다. 저들이야 허깨비 몸뚱이가 허깨비 말을 타고 허깨비 길을 내달리면서 허깨비 재주를 잘 부려서 허깨비 사람들로 하여금 허깨비 일을 보게 하여, 다시금 허깨비 위의 허깨비에 또 허깨비를 더하는 것인 줄을 어찌 알겠는가? 이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노라면 서글픔만 더할 뿐이다(富兒生年不讀一字書, 唯輕轎游俠是事, 徒以月杖星毬, 金鞍玉勒, 三三五五, 翺翔乎十字街頭, 罔朝昏頟頟, 南來北去, 觀者如堵. 惜也! 吾與彼俱幻生於幻世, 彼焉知將幻身乘幻馬馳幻路, 工幻技令幻人觀幻事, 更於幻上幻復幻也. 由是出見紛譁, 增忉怛耳)." 월장과 성구는 격구(擊毬) 놀이를 할 때 필요한 작대기와 공이다. 껍데기 인생들이 부귀를 뽐내고 권세를 으스대며 못하는 짓이 없다. 사람들은 그게 또 부러워서 그들을 빙 둘러서서 선망한다.
허응(虛應) 보우(普雨·1509~1565)는 대단한 승려였지만 요승(妖 僧)의 오명을 쓰고 죽었다. 임종게(臨終偈)가 이렇다. "허깨비 마을에 허깨비로 들어와서 50여 년 동안에 미친 장난 지었구나. 인간 세상 영욕의 일 실컷 다 놀았으니, 꼭두각시 중 노릇 벗고 푸른 하늘 오르리(幻人來入幻人鄕, 五十餘年作戱狂. 弄盡人間榮辱事, 脫僧傀儡上蒼蒼)." 살짝 원망이 담겨 있다. 미망(迷妄)을 벗어던져 진면목과 마주하기가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