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리고 울부짖는 아낙도 없고 손을 들어 흔드는 촌로(村老)도 없다. 무연(無緣)의 고독과 고고(孤高)의 생을 택한 수도승처럼 뒤돌아볼 이유도, 손잡을 사람도 없이 앞만 보고 가는 ‘반공포로’, 아니 ‘예비(?) 국민’, 앞앞에 또 어떤 시련이 어떤 방법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내 마음은 지금 어둠이 깔린 저녁 들판에 외로이 홀로 서서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를 바라보면서도 정작 내가 갈 곳이 없어 망설이는, 집 잃은 철부지의 심경이다. 그러나 온전히 내가 택한 나의 길임을 새삼 다짐하고 결기를 이렇게 토한다.
죽음의 한계를 극복한 내게는 외로움이란 한낱 사치(奢侈) 감정이다. 이렇게 돌이질 하면서도 녹아 붙은 앙금이 씻기지 않는 대목이 있으니, 그것은 어찌하여 양쪽 군대를 자원의 형식으로 나가는 것이 같으며, 의지의 창인 내 눈빛을 확인할 사람 없이 나가는 것이 북에서나 남에서나 같아야 하고, 저승길에서조차 노자가 필요하다는데 동전 한 닢 없이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서글픔이 같고, 통일을 뇌며 주먹을 불끈 쥐는 양태가 같은데, 무엇이 이토록 나를 혼돈으로 몰아가는지, 스스로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지, 알 길이 없는 의문 때문이다. 돌보는 이 없는 잡초처럼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 아니면 알량한 내 의지의 발산 탓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어코 ‘북진통일’이 이룩되길 바라면서 이번에도 초연히 전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분명 내게 희망을 주는 ‘보호자’가 뚜렷이 있다. 이제까지 내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천체의 배웅(?)이 ‘밤하늘의 별’이었지만 앞으로는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해와 흰 구름을 실어 가는 순풍으로 바뀌고 있음이 이것이다. 나는 이제 대명천지에서 기지개를 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를 다하려 한다. 겉으로 나타난 도식적 행동의 뒤 안에 숨은 잔잔한 본능적 향수가 여린 마음을 흔드는 이중적 심리를 외면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진실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생명(生命) 보지(保持)의 강한 충동을 느끼며 미래의 희망을 여기에 거는 습관이 어느새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