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긴 다리를 건너고 신작로를 한 참 가다가 큰길을 벗어나서부터 산기슭에 난 소달구지 길을 따라서 서북서쪽으로 자꾸자꾸 가면 용공사절로 드는 길이 갈라지고 , 예서 산길을 옆으로 비껴 보내고 산기슭만 바르게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가보고 싶던 ‘ 중대리 ’ 발전소가 보인다 . 그래도 어떻게 재미있게 왔는지 금방 온 것 같다 .
달구지 길의 세줄 흙바닥이 꾸불꾸불 하지만 우리를 저절로 석줄이 돼서 가게 하는 재미있는 길이다 . 풀밭 길에 흙이 보이게 패인 줄이 셋이다 , 흙이 드러난 셋 중 가운데 길은 소 발길에 패인 길이고 양옆에 나란히 패인 흙 길은 달구지 바퀴가 낸 길이다 . 뭉개진 땅은 파이고 그렇지 않은 작은 둔덕엔 풀이 우거져서 흙이 보이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 모롱이를 돌아서 , 끈질기게 자라는 길가 풀을 얽어매고 시치미를 떼고 가노라면 덜커덩하고 도시락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 이윽고 고함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 꼼짝없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 바라보고 있던 올무 쟁이는 하늘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고 웃음을 터치지만 누구의 짓인지를 알 수 없으니 넘어진 놈은 다시 누군가에게 전수의 기회만 노린다 . 당하고 올무 놓는 짓이 연속되는 , 한눈을 팔 수 없는 길이다 . 자 , 이렇게 경계하고 훼방 놓고 하다 보니 ‘ 산천은 수려하나 풀포기만 보았고 , 친구는 간데없고 땅 바닥만 보았네 ?’ 다 . 그러나 뚫린 코 구멍으로는 바람과 함께 산천과 인걸 (?) 을 몽땅 쓸어 마시고 들이켰다 . 걸어온 길이 적잖이 사십 리 길이니 피곤도 하련만 아직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 . 걸려 넘어뜨리기 놀이를 한 탓인가 보다 . ‘ 추지령’ 이 병풍같이 둘러쳐진 골짝을 하얀 다리가 놓였다 . 다리 밑은 맑고 푸른 물이 골짝 가득히 메워 흐른다 . 개울을 따라 북향으로 지은 발전소의 건물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 모든 것이 전기로 이루어지니 다른 집들처럼 마른나무나 죽은 나무그루터기 하나 없는 , 갓 지어 회칠한 , 사람이 아직 들지 않은 집 같다 . 우리는 흙도 아니요 자갈도 아니요 모래도 아닌 흙먼지 하나일지 않는 실험실 같은 마당에 모여 앉았다 . 안내가 시작됐다 . ‘ 통천’ 벌의 관개의 목적과 발전의 목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이 발전소는 평범한 사무실 같다 . 여러 가닥의 전깃줄과 변전시설이 눈에 뜨일 뿐 물 구경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집이다 . 이름 하여 도수발전 시설이라나 ? 북한강의 상류를 막아서 땜은 만들고 이 물을 굴을 뚫어서 낙차( 落差 )
가 큰 영동으로 뽑고 , 한 방울의 물도 벌이지 않고 도수로를 이용해서 첫째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 이 물을 다시 상당한 낙차가 나는 곳까지 도수로로 뽑아 끌어서 둘째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 이 물을 또다시 도수로를 통해서 이곳 세 번째 발전소의 터빈을 돌린다는 것이다 . 그뿐이 아니라 마지막 물은 넓은 ‘ 통천 ’ 뜰의 관개수로 사시사철을 무제한 공급한다는 것이다 . 세상나들이를 처음 하는 나지만 이 일은 지금생각해도 통쾌하고 신나는 작품임엔 틀림없다. 어디에 이런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 장난감 같으면서도 엄청난 힘을 내는 작품이 있을 것 같질 않다 . 적지 않은 육만 육천 볼뜨를 생산하여 남한에도 공급하고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다 . 우리가 보는 이 곳은 세번째인 마지막 발전소다. 평형도수로를 산 속 굴로 내려오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 떨어 쏟아내는 지점 위에 올라가 볼 기회를 얻었다. 키를 넘는 굴속에서 용수 같이 가득 차 나와서 잠시 선보이고 바로 옆의 내리꽂는 물길로 쏟아지는 물은 물이 아니라 분출된 한강의 용암이었다 . 동해로 뻗는 이 용암은 천만근의 무게로 힘 있게 내리 쏟아 우리의 삶에 빛을 주고 힘을 주는 원동임엔 틀림없었다 . 볼 것은 터빈밖엔 없었다 . 전 과정을 훑어보지 못하고 끝머리 하나를 겨우 눈요기 한 내가 이런 발전소를 얘기하면 이즈음의 이곳사람들은 이국의 풍물을 듣듯 실감하지 못한다. 이 점이 또한 나를 섭섭하게 한다 . ‘ 용공사 ’, 너무 오래돼서 몇 번이고 산불에 그을리고 재건하고 했다는 절을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렷다 . 이곳의 불상은 하나같이 온전한 불상이 없다 .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이 불상들의 불구는 무엇을 말하는지 , 일찍 산그늘이 진 이 산사의 내력은 기억할 수 가없다 . 그저 할머니가 ‘ 용공사 ’ 말씀을 할 때마다 유명한 절이구나 하고 여겼을 따름이다 . 할머니는 늘 ‘ 용공사 ’ 와 ‘ 석왕사 ’ 를 함께 얘기하시곤 했다 . 이 두 곳은 집을 떠나기 전 소풍 길, 아직 내 기억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곳이고 다시 가보고 싶은 , 나를 아련히 고향으로 이끄는 향수의 샘이다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