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에 다져져서 반들거리는 작은 흙 마당 한복판에 우리 사는 집(?) 모양의 야전용 천막 한 개가 달랑 세워졌다. 갓 펴서 친 진초록 천막에선 싫지 않은 기름 냄새가 풍겨 나온다. 칠이 벗겨지지 않은 새까만 쇠고리가 천막의 처마 둘레에 나란히 박혀서 길들지 않은 연초록의 마사(麻絲) 끈에 꿰여서 팽팽히 이끌리어 힘 있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천막 둘레의 땅바닥에 박힌 작은 말뚝은 아직 빗물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해서 내 마음을 산뜻하게 한다. 얼마 전에 파서 고른 마당의 흙냄새가 이 새 천막의 기름내와 아우러져서 내 고향 바닷가의 해당화 향기에 얹혀 나는 바다 냄새 같아서, 잠시 제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보고 구름을 찾아본다. 그러나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이 골짜기에서, 닮은 고향 바다 구름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바다와 어울린 뭉게구름을 볼 수 없이 고향을 잊고 언제까지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려 한다. 공간적 존재를 제한받는 억류당한 몸, 시간을 앞당겨서 먼 훗날을 피부에 접촉하려 안간힘을 쏟는다.
무지갯빛 꿈은 내 지친 영혼의 죽지에 매달려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내 앉을 자리를 찾아 희박한 공기를 서서히 젓는다. 어쩌면 내 앞날의 예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추(千秋)의 한이 되는 갈림길이 될지도 모를 한순간을 맞아 긴 숨을 몰아쉬는 나, 내 의지를 스스로 물어 다진다. 지금은 미결의 장, 그대로 시간이 정지됐으면 싶다. 그러나 결정된 의지의 순간 선택을 요구할, 그 자리는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천체의 무게를 혼자 진 듯 번민하면서도 작은 나를 돌아본다. 나를 지탱하는 지주(支柱)는 고작 입은 옷가지와 담요 한 장과 비옷 한 장하고 손잡이에 구멍 뚫린 프라이팬 밥그릇과 거기 꾀인 숟가락 한 개가 전부인 것을 자각할 때, 내 모습이 투영되는 눈동자는 뿌옇게 되어 앞을 가린다.
이 초라한 소품이 어찌 멀고 먼 내 갈 길을 비단으로 깔아 줄 것이며 이 어찌 긴 여정에서 동반 행장(行裝)이 되어줄 것인가?
잠시 머뭇거린다. 어쩔 수 없이 밀려 다가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다지고 또 다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난관을 뚫고 내가 지향하는 이 땅에 떨어져서, 내가 설 수 있는 땅을 밟고 서리라! 이런 일은 두 번 오지 않을, 내게 주어진 절호(絶好)의 기회다! 어금니를 굳게 깨물고 들어섰다.
면회심사장은 싱겁게 초라하고 단조롭다. 하지만 이미 내린 엄격한 통제로 인한 당일의 함구령을 어기는 포로는 없다. 한 개의 책상 앞에 미군 장교와 통역관 한 명이 고작이고 수용소 안에 깔린 비무장 미군들이 두 개의 인간 터널을 만들어서 ‘이북’으로 갈 사람과 ‘이남’에 남을 사람을 서로 다른 터널로 옹호하여 인도하는 것이다.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게 처리하는 미군의 솜씨가 인상 깊다. 그들은 텐트 안의 한쪽에 ‘북쪽’ 다른 한쪽엔 ‘남쪽’의 팻말을 세우고 한 사람씩 입실시켜서 자유의사로 두 팻말 중 한쪽으로 가 서도록 하는, 말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포로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반영하도록 배려하였다.
가장 합리적 방법이다. 만약 구두로 심문한다면, 우선 말소리가 새어나가서 포로들에게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듣는 포로 입장(立場)은 억류자로서의 입지에 압도될 수도 있어서, 이후 분리 수용 하드래도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까지가 함축된 듯해서 놀랍다.
나는 내 뜻대로 남기로 하는 끼리끼리 동질 모임, ‘우익’ 500명씩 수용되는 단위 수용소에 넘어갔다.
하늘이 맑고 높아 보인다. 내가 갈 먼 길의 한 발짝을 내디디고 서서히 움직여 본다. 모든 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철조망은 나를 구속하는 가둠 장치가 아니라 내 안전을 보장하는 울타리로 변하고 있다. 둘러선 미군은 이미 적이 아니라 우군의 위치 내 보호자로 둔갑(遁甲)돼 있다.
수용 당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건만 나는 이토록 자유로이 비상(飛翔)하고 있다. 세상 모두가 내 안에 있고 세상의 어느 것도 내 정신적 영역을 침범하지는 못한다. /외통-